더불어민주당이 또 포퓰리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난방비 문제가 병인(病因)을 자극해 고질을 다시 도지게 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왜 재집권에 실패했으며, 국가 재정상태가 왜 지금처럼 망가져 있는지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포퓰리즘은 민주당이 수권하는데 있어서 최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국정을 한 번 더 맡겼다가는 나라 곳간이 거덜날 것이란 우려를 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난방비 급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민주당은 재빠르게 민생 이슈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평소 민생정당임을 앞세워온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 행보였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5~26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와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참석한 긴급대책회의를 연이어 주재하면서 난방비 폭등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대표가 제안한 내용의 골자는 7조2000억원 규모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로부터 ‘횡재세’를 걷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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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구치듯 민주당은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 때 밝힌 30조원 규모의 ‘긴급 민생 프로젝트’ 구상과 연관지어 30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적자 국채를 발행해 또 돈 뿌리기를 하자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뿌린 돈을 회수하느라 전세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시점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경제에 대한 기본상식을 갖추고 있고, 국가경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30조 추경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의 이 제안은 추경을 일상화하자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위기를 재정으로 틀어막으려 했던 지난 정권의 악습을 윤석열 정부도 답습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추경 편성 요건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대량실업, 경기침체, 남북관계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상의 중대한 변화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에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할 지출이 발생했을 때’라는 요건을 추가해놓기는 했지만, 이는 법 적용의 유연성을 담보해 두기 위한 문항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횡재세 구상도 포퓰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포퓰리즘 치고도 꽤나 무리한 포퓰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횡재세 개념을 차용하더라도, 민주당 주장대로 정유회사 같은 에너지기업을 부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생뚱맞기 그지없다.

서구 사회에서 횡재세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은 에너지자원 발굴 회사들이다. 새로운 자원을 발굴해 뜻하지 않게 떼돈을 번 기업들이 공략 대상이다. 이와 달리 국내 에너지 관련 대기업들은 원유를 수입해 가공하는, 이른바 정유 작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다. 애시당초 횡재와는 무관한 곳들이다. 이들 기업이 횡재세를 내야 한다는 논리를 적용하자면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나 세계 굴지의 현대자동차처럼 큰돈을 버는 회사 모두가 횡재세 부과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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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천연가스(LNG)의 국제거래 가격 급상승으로 난방비 부담이 커졌다고 해서 현금성 지원부터 생각하는 것 자체도 잘못됐다. 화들짝 놀라 긴급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도 그런 방식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옳다. 그런 논리라면 국제거래 가격이 마찬가지로 급격히 상승한 휘발유나 곡물가의 소매가격 상승에 따른 개개인의 손실을 국가가 현금 보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천연가스 국제거래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올랐다. 러시아가 유럽 지역에 가스 판매를 제한하자 유럽 국가들이 세계 각지로부터 천연가스를 경쟁적으로 사들인 것이 원인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천연가스 국제거래가는 전년에 비해 평균 5배 정도로 상승했다는 게 전문기관들의 대체적 집계다.

같은 기간 국내 도시가스 상승률은 38.5%에 그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내 가스 판매가를 일제히 세자릿수 인상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 혹한기를 맞아 국내 가스요금 인상분이 본격적으로 난방비에 반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지금의 난방비 소동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부가 그간 마땅한 대책도 없이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한 것이 문제라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전·현 정부 모두가 도긴개긴이다. 미루고 미루다 요금을 올리다 보니 아우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덩달아 에너지 절약 효과도 크게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요금 인상 지연 탓에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천연가스 구입가격과 도시가스 판매가격 차이에서 발생하는 손실액)도 지난해 말 기준 9조원까지 늘어나게 됐다. 당장은 공사채 발행으로 버틴다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가스공사는 곧 천연가스 수입을 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는다.

정답은 미국이나 유럽 각국처럼 천연가스 수급동향에 맞춰 국내 판매가를 조정하는 것이다. 다만, 쪽방촌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한해 에너지 바우처 지급액 증대나 가스요금 할인 정책 확대 등을 별도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작 필요한 것은 대국민 설득이다. 집권 세력으로서는 괴로운 일일테지만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게 상책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까봐, 혹은 선거에서 불리해질까봐 올려야 할 요금을 올리지 못한다면 그 후과는 언젠가 폭탄이 되어 날아든다.

정황상 도시가스 요금은 앞으로 더 올라갈 게 분명해 보인다. 천연가스 수입 원가가 내려가지 않는 한 용빼는 재주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통령부터 옷 하나 더 껴입고 집무한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서라도 에너지를 아끼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지금으로서는 아끼고 견디는 것 외엔 달리 왕도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당장은 취하기 편하고 받아들이기 달콤할지 모르지만 포퓰리즘은 난방비 급등 사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국가경제를 멍들게 할 백해무익한 고질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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