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지하철 무임승차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쌓이는 지하철 적자를 견디다 못한 서울시가 승부수를 던지듯 이용요금 대폭 인상을 예고한 것이 논쟁의 불을 지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심하고 나선 탓에 이번엔 모종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서울시는 만약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하철 요금을 버스 요금 인상과 함께 300~400원가량 올릴 수밖에 없다고 예고했다. 정부를 향해 최후통첩성 고지를 한 셈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지하철 요금 인상폭을 축소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최대 400원 인상분을 메울 정도의 지원이 당장 필요하니 중앙정부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지원 정도에 따라 400원 이내 범위에서 요금 인상폭을 결정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앞서 시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올해 4월 말 쯤 단행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서울시의 주장엔 타당성이 있다. 서울교통공사를 통해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시는 매년 지하철 운영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적자는 2020년 초입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더욱 심각해진 측면이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2020년 1조1448억원, 2021년 9957억원이었다. 지난해 적자폭은 1조원이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올해 지하철 운영적자 규모가 1조2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건만 현재 지하철 무임승차 비율은 30% 정도로 올라가 있다는 게 서울시 측 분석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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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의 1차적 원인은 공공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요금 현실화율이 100%에 못 미치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시가 파악하고 있는 요금 현실화율은 지하철과 버스 공히 65%에 못 미친다. 승객 1명을 태울 때마다 시가 최소 35% 정도의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적자 원인이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어지는 무임승차 혜택이다. 이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들의 무임승차 비율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 주어지기 시작한 때는 1984년이었다.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노인복지법엔 65세 이상 노인에게 수송시설 요금을 할인해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동법 시행령에는 도시철도 할인율을 100%로 못박고 있다. 지하철의 경우 노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데 있다. 1984년만 해도 5.9%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은 2022년 12월 말 현재 18%로 늘어났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2025년이면 노인인구 비율 20.6%를 기록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연합(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가면 ‘고령사회’,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도시철도가 운행을 멈춘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심각해졌다. 오세훈 시장 말대로 지하철 운영사가 민간기업이었다면 진작에 파산했다고 보는 게 옳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선출직으로서 오 시장이 대폭적인 요금 인상을 예고한 배경엔 이처럼 급박해진 저간의 사정이 자리하고 있다. 요금 인상 예고의 배경엔 노인 우대 결정은 중앙정부가 하고 부담은 지방정부에 떠넘겼다는 불만도 일정 부분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시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지자체 도시철도 POS(공익서비스 손실보전 지원)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지 않았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다는 의미다.

이후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 등 6대 도시의 지하철 무임승차 지원을 위한 POS 예산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살아나는 듯하다가 다시 무산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난색을 표한데 따른 결과였다.

일이 꼬이면서 상황은 결국 지하철 요금 대폭 인상으로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잖아도 고물가에 시달리던 서민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이다. 지하철 요금이 인상될 오는 4월 무렵엔 전기·가스 요금도 동시에 올라갈 것으로 보여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게 자명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여당이 문제 해결에 나설 뜻을 밝혔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를 주요 민생문제로 다루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따라서 정부가 이전 입장을 고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재부상했다.

정부가 긴축 기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코레일 외에 도시철도 POS 예산까지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것에도 일면 수긍할 측면은 있다. 그러나 명분으로 보나 인구구조 변화 흐름으로 보나 고령자 지하철 무임승차의 부담을 지자체에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젠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에 도달했다.

무임승차 연령 하한선을 높이든, 할인율을 100% 미만으로 줄이든, 무임승차자 이용 시간대를 제한하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에 중앙정부가 지자체 손실 보전을 해주는데 동의한다 할지라도 무한정 지원을 이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복지 혜택을 줄이는 과정에서는 저항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득을 병행하며 난관을 돌파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세대 간 갈등이 노골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무임승차 논란은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이미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복지는 한 번 제도화해놓으면 그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히 일깨워주었다는 얘기다. 포퓰리즘 기반의 복지 남용은 후대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게임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과도 같은, 잔인무도하고 몹쓸 짓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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