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정유진 기자]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대공황이랑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도 너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

“정신 차리쇼. 인생은 원래 힘든 거요.”

“80년대에 꽁무니 빠지게 일했던 사람이 번아웃 운운하며 불평하는 거 본 적 있는지?” (출처: 미국 칼럼니스트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이는 밀레니얼 세대를 일명 ‘번아웃 세대’로 분류한 글을 미국의 뉴스 전문 웹사이트 ‘버즈피드’에 기고한 이후 그녀의 메일함에 쏟아진 글 중 일부다. 이를 보면 ‘라떼’(설교를 일삼는 기성세대를 칭하는 표현) 논란에는 국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요즘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MZ세대’란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당장 기자가 받아보는 보도자료 몇 개만 훑어봐도 그렇다. 기업이 마케팅 전략을 짤 때 타깃층으로 삼는 대상도 MZ세대 일색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사실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란 단어는 한국의 1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에 해당하는 꽤 폭넓은 연령층의 사람들을 포괄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경제활동 최전선에 있는 젊은 층을 기성세대가 속 편하게 제 입맛대로 규정하고자 적당히 끼워 만든 말에 좀 더 가깝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런저런 밈(meme·유행 중인 콘텐츠)이나 개그 소재로 활용되곤 하는 MZ세대의 특성은 대강 이러하다. ‘평등·가치 소비 선호’,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독립적 성향’, ‘자기 취향에 크게 좌우되는 소비 생활’, ‘놀이와 인증샷 문화’, ‘전화 공포증’ 등등. 안타까운 일이지만 '금일'과 '금요일'을 분간 못하고, '심심한 사과'의 의미를 아예 다른 걸로 착각하는 등의 문해력 빈곤 또한 MZ세대의 부가적 특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세대를 대변하는 특성일 수 있을까마는 적어도 기성세대들은 그렇게 개념정리를 하려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 반작용인 듯 “명징하게 직조했다”는 특유의 표현을 쓴 모 평론가의 한줄평이 그들 사이에서 아예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는 일까지 벌어졌다.

MZ세대가 업무시간에 사무실 안에서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회 부적응자 또는 민폐 캐릭터로 각종 매체 등에서 그려지는 면면을 보고 있자면, 우습다기보다 악의적이란 느낌이 앞선다. 기성세대에게도 MZ세대는 당장 내 자녀이거나 상사의 리드가 필요한 신입 직원일 수 있는데, 왜 그리 박하게 구는 걸까. 어쨌거나 같은 사회 구성원을 이같이 유난스레 타자화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기자는 ‘MZ세대는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양식을 몇 마디 말로 해석하고 재단하려 드는 이들의 태도에서 도리어 기성세대의 무지와 이질감이 묻어나온다고 본다. 바꿔 말하자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는데 인색한 기성세대들의 꼰대짓이야말로 MZ세대란 단어가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게 된 진짜 원인은 아닐지. 그게 아니고서야 자꾸만 젊은 사람들을 일정한 규격에 구겨 넣으려는 이 기묘한 시도를 설명할 수 없다.

‘라떼’나 세대 차이라는 단어가 이미 따로 존재하듯, 서로 다른 세대의 인간들끼리 의견 차이가 생기거나 갈등이 빚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상호 이해와 존중의 예(禮)다. 그런 예를 갖추기 위해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우선 숨겨진 민낯이 남부끄러운 꼴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몸담은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바닥’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간과하기 쉬운 점 하나를 덧붙이자면, 지금의 MZ세대도 언젠간 ‘꼰대’ 연령대에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막말로 ‘내가 네 나이 땐 안 그랬다’는 ‘라떼’스러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게 될 가능성은 누구도 쉽게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중세 시대 이단 심문관이 아니다. ‘갓생’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으니, 누군가를 쉽사리 결론짓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 행위가 한때 쉽고 재미있고 편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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