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서울시가 요란스레 헛발질을 함으로써 스타일을 단단히 구겼다. 오세훈 시장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으로서는 자신의 과거 ‘말씀’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자초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단초는 설익은 버스요금 거리비례제 제시였다. 서울시가 심각한 고민 없이 거리비례 버스요금제를 불쑥 내민 것이 스스로 화를 불렀다. 여론이 워낙 거칠게 반응하자 화들짝 놀라 이틀 만에 거리비례제안을 거둬들이긴 했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일의 전개과정은 대략 이렇다. 서울시는 지난 6일 서울시의회에 ‘대중교통 요금 조정 계획안’을 제출했다. 의견 청취를 위한 말 그대로의 ‘안’이었다고는 하지만 내용은 서울시의 버스요금 대폭 인상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골자는 기본요금을 올리는 것과 함께 균일요금제를 손질해 버스요금을 탑승 거리에 비례해 받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버스 기본요금을 기존 1200원(카드결제 기준)에서 1500원 또는 1600원으로 올리면서 그와 병행해 거리에 따라 추가요금까지 매기자는 게 주내용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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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안에는 10㎞ 이상 이동시 붙는 특정 거리당 지하철 추가요금을 기존의 100원에서 150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즉, 지하철 요금은 기존 1250원에서 1550~1650원으로 올리고 동시에 10㎞ 초과시 5㎞마다, 50㎞ 초과시 8㎞마다 부과하던 추가요금을 각각 100원에서 150원으로 올리자는 쪽으로 손질됐다.

이중에서도 특히 논란이 된 것은 버스요금 거리비례제였다. 구체적 내용은 간선 및 지선버스에 거리비례제를 적용해 10~30㎞ 구간에서는 5㎞마다 150원을, 30㎞ 초과 시엔 150원을 추가로 부과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현재 1200원만 내면 거리에 관계없이 이용하는 지·간선 버스도 10㎞ 이상 타고 갈 경우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말이 좋아 거리비례제이지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하듯 버스요금을 이중으로 인상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서울시의 움직임에 대중은 강하게 반발했다. 고령자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꼼수에 의한 추가 인상 의도도 괘씸했지만 시점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버스요금을 이중으로 일거에 대폭 인상하려 한 것이 고물가에 질린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변두리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의 반발이 특히 강했다. 거리비례제가 도입되면 수도권 거주자는 물론 서울 외곽에 거주하는 이들조차도 도심까지 혹은 도심을 가로질러 버스로 출근하려면 도리 없이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도권 거주자들은 광역버스 요금 인상에,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 인상, 시내버스 거리별 추가 요금 신설 등 삼중의 부담 요인을 떠안게 됐다. 수도권 거주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광역버스의 기본요금은 현재 2300원에서 조만간 3000원으로 상향조정된다. 게다가 30~60㎞ 이동시엔 5㎞마다 150원, 60㎞ 초과 시엔 150원의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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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최근 수년래 집값 부담으로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한 서울 근무자들에겐 교통비 부담 증가가 가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입에서 ‘요금폭탄’이란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오세훈 시장의 과거 발언이 대중의 입에 회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서울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분들만 서울시민이 아니다”, “서울에서 낮에 생활하는 이들도 다 서울 시민”이라는 발언 등이 그것이었다. 이 발언의 소환은 정치인 오세훈 시장에겐 꽤나 민망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해프닝은 오 시장 개인의 정치적 이해를 넘어 서울시 행정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닌다. 시 행정에 대한 불신은 설사 그 방향이 옳다 할지라도 추진 과정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불신을 제거해줄 확실한 대안은 시민의 아픔을 공감하는 행정,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행정을 펼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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