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이슈가 탁구공 신세가 돼버린 듯하다. 핑퐁 게임을 하는 주체는 국회와 정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양쪽 다 임무 자체를 상대편에 떠넘기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변죽을 울리듯 원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시늉을 하려 할 뿐 핵심 사안은 상대방의 몫이라는 게 양측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국민연금 제도에 손질이 가해져야 한다는 데는 여야를 망라한 국회나 정부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양쪽 모두 익히 알고 있어서이다. 결국 큰 방향은 ‘더 내고 덜 받는’ 쪽이어야 한다는데도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건 그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다. 원론이나 개론에 있어서 입장차가 없다면 각론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나가는 게 당연한 순서다. 문제는 각론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부적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는 이해 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국회가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때는 작년 7월이다. 이후 반년 간 논의를 해왔으나 지금까지 의견을 모은 내용은 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야 한다는 것과 가입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가입기간을 늘린다는 것은 곧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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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이후 ‘어떻게’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 손질이 근간인 모수개혁 방안 마련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수개혁은 연금개혁의 전부라 할 만큼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기피한다는 건 사실상 연금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국회와 정부가 힘을 모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이제 와서 정부가 먼저 개혁안을 내놓으면 그 안을 국회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모수개혁을 위한 구체안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안을 구체화시켜야 하는데 표가 무서우니 그 작업을 정부에 넘기겠다고 말하고 있는 꼴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국회는 지금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초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여론 수렴을 거쳐 예고된 시점인 올해 4월까지 최종안을 완성할 수 있다.

미적거리기로 치면 정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노동·교육과 함께 3대 개혁의 하나로 연금개혁을 제시했지만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4지 선다형’ 연금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국회에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한 채 개혁임무를 방기했다는 평을 들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편집인협회 월례 포럼 초청 행사에서 국회가 정부에 개혁안을 먼저 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정부는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용계획을 제출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도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본질적 접근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책임지고 구체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분석되는 발언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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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나 국회나 답은 이미 알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정부는 지난달 이미 국민연금에 대한 재정추계를 마쳤고, 국회 또한 그 내용을 토대로 논의를 이어왔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에 소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적자 발생 시점은 2041년으로 추정됐다. 저출산·고령화 가속화 탓에 보험료 낼 사람을 줄고 연금 받을 사람 숫자는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갈 것이란 전망이 그 같은 결론의 배경을 이뤘다. 기금 고갈 시점이 재정추계 때마다 앞당겨진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답은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거나 수령액을 낮추는 것뿐이다. 보험료율을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 하는지도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이에 대한 세부 내용 역시 정부나 국회 모두 잘 알고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서로 핑퐁 게임을 하는 모양새를 볼 때 최종적으로 개혁을 주도해야 하는 쪽은 정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공무원 연금 개혁이 정부 주도로 이뤄진 점으로 보나, 현 집권세력이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책임의식 부재를 그토록 비난해온 정황으로 보나 정부가 총대를 메는 게 현실적이다. 행여 개혁 작업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려 했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연금 개혁은 정권의 임기 중반에 시동을 걸기엔 너무나 힘겨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추계 내용이 그릇된 메시지로 둔갑하는 것을 방지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의 청년층은 국민연금 수혜자가 되지 못할 것이란 비현실적 인식이 팽배해 있는 한 국민연금 개혁은 더 어려워진다. 추계는 그야말로 추계일 뿐, 국민연금 지급을 정부가 확실히 보장한다는 점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법에 정부 지급보증을 강제조항으로 명기하는 작업을 속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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