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은행들이 도 넘은 돈 잔치를 벌이다 거센 역풍을 만났다. 어쩔 수 없는 고금리 정책 탓에 모두가 고통 받는 이때 난국을 이용해 큰 이익을 남긴 뒤 성과급과 배당금을 흥청망청 나눠준 것이 원인이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나서서 상생을 거론하며 “금융위원회가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대통령의 이 발언은 평소 같으면 ‘관치’ 논란을 낳을 수 있는 것이었다. 취임 전부터 자본주의의 가치를 앞세워온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시비에 휘말리기 쉬운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은 오히려 윤 대통령의 그 같은 발언을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은행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는 인식이 그만큼 팽배해져 있음을 말해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5대 시중은행은 최근 수년에 걸쳐 매년 1조원 이상의 성과급을 임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지난해의 경우 아직 성과급이 확정되지 않은 NH농협은행 상·하반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하반기 성과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의 성과급만 9428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5대 시중은행 전체로 치면 1조원을 크게 웃돌 것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5대 은행들은 그 이전에도 매년 조 단위의 성과급을 지급해왔다. 연도별 성과급의 합은 2017년 1조78억원, 2018년 1조1095억원, 2019년 1조755억원, 2020년 1조564억원, 2021년 1조709억원 등이었다. 전국민의 고금리 고통이 한계상황에 임박한 지난해엔 성과급 규모가 더 크게 증가해 1조3000억 내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은 기본급 기준으로 최소 200%대 후반에서 400%에 이르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성과급 규모가 이처럼 커진다는 것은 은행들이 고금리를 악용해 짭짤하게 ‘돈놀이’를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묵살한 채 때 만난 듯 예대마진을 키워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해서 5대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한 해에 기록한 순이익은 2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KB, 하나, 신한,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순이익만 해도 15조8500억원에 달했다.

일차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다. 금융업의 특성상 과점체제가 갖춰져 있다는 점, 정부가 감염병 후유증 극복을 위해 서민들의 고통 감내를 요구하며 고금리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이용해 사실상 고리대금업을 한 게 문제라는 의미다. 예대마진 확대는 예금금리는 천천히 찔끔찔끔 올리고, 대출금리는 기준금리나 시장금리가 오르는 즉시 빠르고 넉넉히 반영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금융 당국이 예대마진 축소를 위해 예금금리 인상의 자제를 요구하면, 은행들은 그 요구마저 예대마진 확대 수단으로 악용한 정황마저 나타났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국내 은행들의 이자 장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금융 기법을 개발해 국제경쟁력을 키우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이윤을 키워가려 하지는 않고, 금융 소비자들의 고혈만 빨아들이려는 자세가 늘 문제로 지적돼왔다. 세계적 금융그룹들이 단순한 상업은행의 영역을 넘어 일찌감치 투자은행(IB)으로서 역량을 확보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두 번 째 문제는 그렇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내부 돈잔치에 탕진했다는 점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임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잔치가 사례 중 하나였다. 나아가 은행들은 점포 축소와 기계화 등으로 인력수요가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희망퇴직자들에게 억대의 퇴직금 및 위로금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은행이 법정 퇴직금 외에 희망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지급한 돈은 많은 경우 1인당 3억~4억이나 됐다. 법정 퇴직금까지 포함하면 퇴사자들에게 많게는 7억~8억원의 돈을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했다는 얘기다.

때마침 공개된 2021년 국내 퇴직 근로자들의 퇴직금 평균 1501만원에 비하면 위화감을 조성할 수준의 금액이다. 이 퇴직금 평균은 14일 국회 기재위 소속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국제청 자료에 나와 있다.

국내은행들의 과도한 배당금 지급도 문제로 지적할 만하다. 순이익을 많이 남겼으니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넉넉히 지급하는 것 자체는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고통을 이용해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주주들의 이익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양정숙 의원이 공개한 금감원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국내 은행 17곳의 배당금 합은 7조2412억원에 이르렀다. 이전 연도의 배당금 규모는 2017년 4조96억원, 2018년 5조4848억원, 2019년 6조5446억원, 2020년 5조6707억원 등이었다.

이에 금융 당국은 우선 은행들이 이익금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도록 유도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특별대손준비금’의 확충이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되는 이 준비금은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배당금을 나눠주는데 쓰일 수 없는 돈이다. 위기시 정부에 손 벌리지 말고 잘 벌 때 자생력을 튼튼히 해두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금융 당국은 또 윤 대통령의 주문 취지를 살려 은행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금융소비자들과 나누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상생의 정신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금리인하 요구권 사용을 보다 활성화시키고 서민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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