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금융과 통신 서비스 업종의 과점 구도에 손질이 가해진다. 정부는 이들 분야가 과점체제를 갖추고 있는 탓에 소수의 사업자들이 사실상의 짬짜미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과점 사업자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과점이란 시장 규모에 비해 소수라 할 수 있는 몇몇 사업자가 과도하게 이익을 취할 때 쓰는 용어다.

그러나 각각의 특징을 고려할 때 금융·통신 사업 분야에서 정부 의도대로 다수 사업자에 의한 경쟁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실 속에서도 과점 완화에 대한 기대가 있는 반면 목적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3사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는 통신 시장과 달리 5개 금융지주에 의해 주도되는 금융업 분야를 과점체제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점체제의 인위적 변경 움직임을 촉발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며 질타성 발언을 쏟아낸 대상은 거대 시중은행들이었다. 그는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면서 은행들이 수익을 낼 때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두고, 이를 통해 기업과 국민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실질적 경쟁 시스템 강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특단의 조치란 과점체제 완화 또는 해체 시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비슷한 발언은 이틀 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있었다. 당시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보다 직설적으로 은행들을 공격했다. ‘돈잔치’라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과점체제의 폐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연이어 나온 윤 대통령의 질타성 발언은 고금리 시기를 틈타 은행들이 과도하게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을 키우는 방법, 소위 ‘이자 장사’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국내 5대 금융지주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 한 해 동안 이자 장사로 얻은 수익만 해도 49조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18.5% 증가한 액수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의 비이자수익 합계가 전년보다 30%가량 감소해 9조3800억원대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다.

고금리로 기업과 개인을 망라한 금융소비자가 고통을 받는 동안 은행들은 상황을 즐기듯 이자 장사를 짭짤하게 해왔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경영을 잘 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고통을 악용해 돈벌이하는데 치중해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반면 고객들은 지난 1년 동안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바람에 40조에 육박하는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 한국은행은 일찍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가계의 이자부담이 연간 3조3000억원가량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었다.

이런 와중에 은행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예금금리를 오히려 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예대마진 축소와 은행권으로의 자금 집중 방지를 위해 금융 당국이 예금금리의 과도한 인상 자제를 요구한 것을 구실로 삼았다. 은행들은 이 요구마저 예대마진을 더 키우는 쪽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금융소비자들의 불행은 곧 은행들의 행복으로 귀결됐다. 이자수익이 크게 늘자 은행들은 배당금을 늘리고 임·직원들에게 ‘억’소리 나는 성과급 잔치를 베푸는 등 흥청망청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비웃는 듯한 그 같은 행동은 여론의 질타를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은행업 과점 해소를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은행들이 매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대통령의 질타에 금융당국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금융위원회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의 일차 질타가 나오자 은행권의 경영·영업 관행을 개선할 목적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방안을 모색해 올해 상반기 중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계획과 함께였다.

상정 가능한 대안으로는 은행업 인가를 설립 목적이나 용도 등에 맞춰 세분화한 뒤 분야별 전문은행 설립을 유도하는 방안,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추가 허용하는 방안, 핀테크업체의 금융업 진출을 독려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적극적 대안으로는 금산분리 완화 또는 해지를 통해 대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도 테이블에 올려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 파기는 야당 등의 반대가 예상되는 만큼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은행별 금리 현황을 소비자들이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공시를 강화하고, 신용도가 개선된 대출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도록 안내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과점 해소의 직접적 방법인 경쟁업체 진출 장려 정책은 금융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기반이 약한 신생 금융기관들이 ‘메기효과’를 내기는커녕 금융시장에서 불안감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금융업 과점체제 개선을 위한 몇몇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가 되기도 했다.

5대 금융지주가 예금과 대출을 통틀어 대략 7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현 상황을 과점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금융사를 늘리기보다 거대 은행들이 과도한 이자수익을 올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통신의 경우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통신 3사 외에 제4의 사업자가 경쟁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4 사업자 후보군으로는 대형 플랫폼 업체와 게임사, 전자상거래업체 등이 거론된다.

대통령실에서는 국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40~100G(기가) 사이의 요금제가 출시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이를 활용해 보다 다양한 요금 구간을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사업 특성상 자본력을 갖춘 사업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전에도 정부가 주파수 할당을 통해 제4 사업자를 시장에 진입시키려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시도는 결국 알뜰폰 활성화 단계에서 끝나고 말았다. 현재 정부는 지난해 KT와 LG유플러스로부터 회수한 28GHz(기가헤르츠) 대역의 5G용 주파수를 활용해 새 사업자를 선정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사업자가 통신 3사의 기존 망을 빌려 전국 서비스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두고 있다.

정부는 새 사업자 선정 노력과는 별개로 요금 구간을 다양하게 설계해 이용자들이 전반적으로 통신비 절감 효과를 얻도록 하는데 치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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