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3.50%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한은은 23일 올해 두 번째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시장의 대체적 예상도 금리 동결이었다.

이 결정으로 한은의 기준금리 연속 인상 행진은 7회로 끝났다. 한은은 0.5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2021년 8월부터 줄기차게 올려왔다. 지난달까지 0.25%포인트 인상 8회, 0.50%포인트 인상 2회를 단행했다. 1년 반 동안 기준금리를 10회에 걸쳐 도합 3.00%포인트나 올린 셈이다. 장기간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한 물가를 잡기 위한 조치였다.

이날 금리 동결은 예상에 부합한 결론이었지만 한은의 고심은 꽤나 깊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준금리를 묶어두자니 끈질긴 고물가가 신경 쓰이고, 물가 관리를 위해 긴축을 강화하자니 이미 그림자를 비치기 시작한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이자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결국 한은은 가계와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이자 부담 증가로 겪게 될 고통을 더 중요한 금리결정 요인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수출액이 줄고, 에너지 공급난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무역수지가 11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내수마저 날로 위축되는 현실도 고려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재정경제부는 우리 경제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경기가 둔화를 넘어 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정부가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를 억제시키기 위해 시중은행들을 압박하는 현실도 한은의 인플레이션 파이터 본능을 약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는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우려를 키우고 소비를 위축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의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꺾일 줄 모르는 고물가도 문제지만 임계점에 육박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두 나라 간 기준금리 격차는 이미 1.25%포인트(상단 기준)로 벌어져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다음달 21~22일(현지 시간) 통화정책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더 올려도 우리와의 금리 격차는 1.50%포인트로 증대된다.

이날 새벽(한국 시간) 연준이 공개한 지난달 통화정책 회의록은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의사록에 따르면 이달 1일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다수 위원들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인상폭의 축소)을 입증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위원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이 종국엔 최종금리 상단을 5.50%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우리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할 경우 기준금리 격차가 2.00%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치명적 부작용 없이 우리가 최대한 감내할 수 있는 금리 격차의 한계를 1.50%포인트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다수 전문가들은 고육지책으로 내려진 한은의 이번 결정이 일정 부분 부작용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당장 신경 쓰이는 것이 외화 자본의 빠른 유출이다. 최근의 환율 동향은 그 같은 불안 요인의 증대를 시사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19일 이후 1200원대로 내려서면서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수일 째 다시 1300원선을 오리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간 금리차가 더 벌어지면 원화가치 절하 속에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에서 외화자금이 대거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본시장 불안은 안 그래도 약화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더욱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0.4%)을 기록했고, 이런 추세는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올해 성장률로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은 1,6%를 제시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4%였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3.6%)보다 낮아진 3.5%로 수정됐다.

한은이 향후 기준금리를 더 올릴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한은도 기준금리 3.50% 유지에 따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면밀히 검토해가며 통화정책을 운용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한 인내하되 여차직하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그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 다섯 명이 당분간은 최종금리가 3.75%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3.50% 유지가 적정하다고 말한 위원은 한 명이었다고 부연했다. 총재 자신의 의견을 배제한 채 금통위 내부 분위기를 전해준 것이었다. 금통위는 이 총재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총재는 ‘상당 기간 동안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은의 물가목표 2%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는 “물가 경로가 예상에 부합해 장기목표인 2% 수준으로 가는 것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되면 그때 금리 인하(피벗)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이전에 금리 인하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의 섣부른 기대를 억제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들로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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