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속세제에 대한 손질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범정부 차원의 임시조직인 조세개혁추진단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사실은 기획재정부(기재부)가 24일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4개의 임시조직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국무총리 훈령을 공포·시행한다고 밝힘으로써 확인됐다. 기재부 외에 각각의 관련 부처가 공동참여해 꾸려질 신설 조직은 조세개혁추진단 외에 원스톱 수출·수주지원단, 신성장전략기획 추진단, 국고보조금 부정수급관리단 등이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조세개혁추진단이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깊은 상속세제 및 부동산 보유세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두 가지 과제를 다루기 위해 추진단은 다시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상속세제 개편팀과 보유세제 개편팀이 그 둘이다.

보유세제 개편팀은 그간 국회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져온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간의 연계성을 제고하기 위한 작업을 벌인다. 재산세와 종부세를 통합하는 방안도 주요 의제의 하나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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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는 당초의 도입 목적에서 벗어나 집 한 채가 전부이다시피 한 은퇴 고령자와 일부 중산층의 부담을 과도하게 키운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종부세를 둘러싸고는 이중과세 논란과 함께 미(未)실현 이득에 대한 부당한 과세라는 주장도 제기되어왔다.

사회적으로 보다 큰 논란을 일으킬 주제는 역시 상속세제 개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관련 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제 개편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추진단 설립은 사실상 상속세제 개편을 알리는 본격적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상속세 부담 정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과도한 세 부담이 조세 저항을 키운 나머지 탈세를 자극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재벌 대주주에 한해서는 최고세율이 할증 10%를 포함해 60%에 이를 정도여서 재계에는 오래 전부터 무리한 세제가 기업 승계를 어렵게 한다는 불만이 팽배해져 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상속세·증여세 세율은 1억 이하 10%, 1억 초과 5억 이하 20%, 5억 초과 10억 이하 30%, 10억 초과 30억 이하 40%, 30억 초과 50%로 규정돼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망한 뒤 삼성가(家)에는 1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상속세가 부과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의 세계 최고 부자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이미 소득세 및 상속세를 낸 뒤 보유한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데 엄청난 상속세를 또 내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에 맞는지 여부도 논란거리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이 커지게 한 요소 중 하나로는 유산세제가 꼽힌다. 세율 자체가 높은 것도 원인이지만 유산세제는 상속인들의 세 부담을 다시 한 번 키우는 주요인으로 지목돼왔다. 이를 유산취득세제로 바꾼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그간 기재부는 유산취득세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왔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는 상속세 부과에 한해 유산세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자녀 등 복수의 상속인에게 재산을 전해줄 때 상속재산 전체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방식, 즉 유산세제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A라는 사람이 B, C에게 40억원을 반씩 물려줄 경우 40억에 대해 상속세가 부과된다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금액을 물려줄 때 유산취득세제 방식을 취하면 B, C 각자가 받은 20억원에 대해 각각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이렇게 되면 유산세제 방식을 적용할 때보다 두 사람이 내는 상속세 총액은 줄어들게 된다. 상속세 역시 기본적으로 누진과세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유산세제 방식으로 걷는 나라는 한국 외에 미국·영국·덴마크뿐이다. 상속세 자체가 없는 나라들도 있지만 과세할 경우 유산취득세제를 적용하는 게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산취득세제는 합리성과 응능(능력에 맞음) 부담의 원칙에 더 잘 부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유산취득세제를 기피해온 건 이 제도를 택하면 과세행정이 복잡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금융실명제가 정착됐고 행정 전산화가 잘 갖춰져 있어서 유산취득세제를 택하는 데 있어서의 기술적 장애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새 정부가 유산취득세제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는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상속 및 증여세 과세를 위해 설정된 구간 기준선이 거대해진 우리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세율 50% 적용 기준선을 30억으로 잡은 때가 20여년 전인 만큼 경제 규모에 맞게 구간 조정이 필요해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제도 개선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세수 중립적으로 제도를 개선한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지만 야당으로부터 ‘부자 감세’ 주장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건전한 비판과 그로 인한 찬반 논쟁은 최상의 제도를 도출하는데 약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논의 과정에서 부자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이 마구 표출되는 일이다. 소수 부자에 대한 다수의 적개심을 유발해 정치적으로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상속세제 합리화 작업의 성패는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의 극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 극복의 동력은 합리적 방향으로의 세제 개혁에 대한 굳건한 의지일 수밖에 없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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