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한국과 미국의 중앙은행은 각각 자국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중앙은행이 아무런 구속 없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로부터, 연준은 미 의회로부터 이런저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종종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했지만 연준으로부터는 아니다”라는 취지를 말하곤 한다.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연준의 기조를 마냥 무시했다가는 국내 자본시장 혼란 등의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연준 입장에서는 미 의회가 시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다. 연준 이사회 의장은 수시로 의회에 출석해 통화정책 방침을 보고해야 하고, 의원들의 다양한 질의에도 답해야 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경우 공개발언의 대부분을 의회 증언을 통해 하고 있다. 국내외 증시를 휘저은 7일(이하 현지시간) 파월 의장의 발언도 의회 증언대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파월 의장은 이날 반기 통화정책 보고를 위해 상원에 출석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신화/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신화/연합뉴스]

이날 파월 의장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매파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 여파로 당일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들은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수별 변동폭은 다우존스30산업평균 -1.7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1.53%,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1.25% 등이었다.

그 여파는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에도 그대로 밀려들었다. 8일 코스피는 전날 종가보다 1%대 하락한 가운데 거래를 시작했고,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 대비 17원 이상 오른 상태에서 하루 장을 열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의 이날 증언은 향후 통화정책 기조가 보다 강경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파월 의장의 증언은 출발부터가 매파적이었다. 그는 발언 첫머리에서 “긴축의 완전한 효과는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며 “할 일이 더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가 안정이 없으면 경제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노동시장 여건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설 중간 부분에서도 노동시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노동자가 누리는 고임금의 혜택도 인플레이션이 다스려지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임금 상승은 근로자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효과가) 인플레이션으로 잠식되지 않는 경우에만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강경 기조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자각한 듯 최근의 경제 환경 변화를 강조했다. 미국의 고용과 소비 지출, 제조업 생산 등 지난 1월의 각종 경제지표들이 한 달 전에 비해 ‘역전’(reverse)되면서 탄탄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같은 역전 현상에는 지난 겨울 동안 나타난 북반구의 온화한 날씨가 일부 반영됐다는 진단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는 지난 1년 간 공급망 혼란이 해소된 덕분에 상품 부문의 인플레이션이 하락했다고 진단하면서도 핵심 서비스부문에서는 아직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서비스 부문에서의 인플레이션이 감소해야 물가 안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었다. 이 말은 자신이 지난달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내놓은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상승폭이 줄어드는 것) 시작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춰가는 과정은 멀고 험난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최근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금리의 궁극적 수준(ultimate level)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가 안정 회복을 위해서는 한동안 제한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역사가 통화정책의 조기 완화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목표 달성시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달 21~22일 열리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보다 우세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연준이 이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70.5%로 급등했다. 하루 전의 빅스텝 확률은 31.4%였다.

연준의 최종금리(Terminal Rate)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도 재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시장에서는 지난해 12월의 점도표를 토대로 연준의 최종금리가 5.00~5.25%(중간값 5.10%)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연준의 최종금리가 상단 기준으로 5.50%에 이르면 우리와의 기준금리 격차는 지금의 1.25%포인트에서 2.00%포인트로 더 크게 벌어진다. 한은으로서는 설사 단기간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격차라 할 수 있다. 이미 역전돼 있는 한·미 간 금리차가 이 정도까지 벌어진다면 외화 자금이 일거에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원/달러환율이 급격히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은 우리의 수입물가를 급등시켜 국내 물가를 다시 한 번 자극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한·미 간 금리차에 대한 우려는 연준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경우 극단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 양국 간 기준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여기서 초래되는 자본시장의 불안감은 4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13일) 때까지 이어질 게 뻔하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금의 3.50% 수준에서 유지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그 계기가 된 것이 파월 의장의 이번 상원 청문회 증언이었다. 파월 의장은 8일엔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다시 한 번 통화정책에 대해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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