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탁주·맥주에 적용되는 과세체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서민술에 한해 세금을 줄여 주류 생산업체들의 출고가격 인상 압박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일차적 목표인 듯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서민들이 가격 부담 탓에 맥주나 탁주마저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물가 당국자가 맥주와 탁주를 콕 집어 주세 부과 체계의 개선을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주세법은 주정과 탁주·맥주에 한해 종량세제 방식으로 과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들 품목에 대해서만 주세의 과세표준을 수량(수입신고 수량 또는 제조장 반출 수량)으로 하도록 정한 것이다. 기타 주류에 대해서는 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삼는 방식, 즉 종가세 방식을 취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탁주·맥주에 대한 주세 부과 방식에 또 하나의 조건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요는 종량세제에 물가연동 방식을 추가하는 과세체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얘기다. 물가연동제란 말 그대로 물가 상승분을 주세에 반영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종량세제만 취할 경우 일정량의 주류에 대해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세금이 변하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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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이 같은 방식이 적용됐지만, 서민 부담을 덜어주면서 국세 수입도 적정 수준에서 보장받으려던 정부의 의도는 적중하지 못했다. 세금 인상으로 출고가가 몇 십원만 올라도 음식점에서의 맥주값 등이 500원 또는 1000원 단위로 오르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결국 세금 인상에 의해 연례행사처럼 탁주·맥주 출고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맥주를 예로 들면 올해 4월부터 리터당 세금은 전년보다 30.5원 오른 887.5원으로 바뀐다. 고물가 탓이다. 작년의 리터당 인상폭은 20.8원이었다.

주류 제조사 입장에서 볼 때 세금 인상분은 출고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바로 손실로 연결된다. 원재료비와 달라 절감 노력이 통하는 대상도 아니다. 이런 점이 주류 제조사들에게는 피치 못해 출고가를 올린다는 명분을 제공해온 측면이 있었다.

이들 주종의 가격 인상은 종가세 대상인 소주 가격까지 덩달아 올리는 효과를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그 바람에 음식점에서 대체로 4000원 정도이던 맥주와 소주 한 병 값은 지난해에 각각 5000원으로 올랐고, 조만간 6000원이 일반화될 것이란 예상까지 등장하게 됐다. 이 정도면 퇴근길에 동료들과 반주 삼아 가볍게 한 잔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음식값이 수개월 전에 비해 두 자릿수로 인상된 마당이라 음식점 술값 인상은 외식물가 인상의 체감도를 더욱 키우는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가 서두르듯 주세 과세 방식의 변경 의향을 드러낸 것은 이 같은 현실에서 비롯됐다. 추 부총리는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종량세제에 더해진 물가연동제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면서 “이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가격을 편승 인상케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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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그의 발언엔 주류 생산 업체와 유통업체들의 편법 인상 쪽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종량세 대상이 아닌 소주값을 거론하며 “기회를 틈탄 편승 인상은 없는지, 가격 인상 요인이 생겼으면 함께 노력하며 흡수할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런 추론을 가능케 해주었다.

주류 제조업계는 추 부총리의 발언에 반색하는 기류를 드러냈다. 그간 물가연동제 탓에 부득이하게 가격을 올리다 보니 주류도매상과 업소,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는 푸념과 함께였다. 사실은 ‘이 때다’ 싶어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으면서도 제도 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책임 소재야 어찌 됐든, 정부의 주세제도 개편 방향은 탁주·맥주에 대해 종량세를 유지하되 물가연동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잡혀 있는 것 같다. 다만, 세제 개편으로 부족해질 국세 수입을 메우기 위해 국회가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탁주·맥주의 종량세액을 새로 정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되면 주류 제조업체들이 적어도 주세 인상을 빌미로 출고가를 올리는 일만큼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세제도 개편은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가격이 적절한 선에서 유지되도록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기왕 손대기로 했다면 세수에 다소 악영향이 생길지라도 탁주나 맥주 같은 서민술 만큼은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과감한 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2019년 주세제도 개편 때 또 다른 서민술인 소주를 저가 유지 목적으로 종가세 대상으로 남겨둔 것처럼, 정책목표를 소비자 가격 안정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탁주나 맥주·소주 등은 서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기본 요소 중 하나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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