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국내 은행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파에 크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적어도 SVB에 비해서는 안전하다는 평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구조의 차이다.

SVB와 국내 금융사들의 수익구조 차이를 설명하려면 먼저 SVB의 파산 원인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신 보도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SVB 파산 사태는 고금리 장기화로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위기를 느낀 고객들이 대규모 동시 인출에 나서는 바람에 발생했다. 우리 금융사들이 고금리 시대에 오히려 큰 수익을 올리며 재무구조를 튼튼히 한 것과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장기적 고금리가 SVB에게는 재무구조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국내 금융사들에겐 그와 정반대의 긍정 효과를 내주었다는 의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입구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입구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상반된 효과가 나타난 원인은 간단하다. 고객으로부터 예치한 돈을 굴리는 방법이 달랐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자산 포트폴리오의 차이가 정반대의 효과를 내게 한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SVB 사태를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SVB는 고객으로부터 예치한 돈을 주로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문제는 수신이 단기 예금 위주로 이뤄진 반면 투자용도로 사들인 국채의 경우 10년물 등 장기채가 많았다는데 있었다. 그 탓에 고객들의 예금 인출 러시가 재무구조를 일순 악화시켰고, SVB는 안전한 자산을 대량 보유하고도 당장 지불할 돈이 모자라 파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됐다.

하지만 우리 금융사들은 SVB와는 다른 수익구조를 지니고 있다. 국채 등 안전자산에 장기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산관리를 다양화하기보다는 예대마진을 키우는데 주력해왔다. 싼 이자로 예금을 유치한 뒤 그 돈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단순하고도 원시적인 방식을 주로 취해왔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로 인해 그간 국내 금융사들은 사업 다각화와 선진금융기법 개발 노력을 외면한 채 예금자들의 고혈만 짜내는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 금융사들이 경제의 혈맥으로서 순기능을 하려 하기보다 고객들의 고통을 기반으로 자기 배만 불리려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SVB는 여신(대출)이 수신(예금 유치)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이는 고리의 대출을 발판 삼아 수익을 얻는데 치중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SVB의 전체 수신 규모는 1747억 달러였고, 여신은 그보다 훨씬 적은 743억 달러에 불과했다. 총수신에서 차지하는 총여신 비중을 말하는 여수신 비율은 42.5%였다.

반면 국내 주요 은행들의 여수신 비율은 모두 90%가 넘는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나와 있는 지난해 3분기 기준 주요 은행별 여수신 비율은 KB국민은행 99.5%, 신한은행 95.9%, 우리은행 96.3%, NH농협은행 92%, 하나은행 91.6% 등이었다. 여수신 합계액이 가장 큰 국민은행의 경우 총수신은 367조959억원, 총여신은 365조1070억원으로 집계됐다.

SVB와 국내 은행들은 유가증권 보유 비율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SVB가 지난해 말 현재 보유한 채권의 규모는 1174억 달러로 총자산의 55% 수준이었다. 이는 국내 은행 중 자산규모 1위인 KB국민은행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유가증권 보유비율이 16.2%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작년 3분기 기준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517조5632억원, 유가증권 보유액은 84조580억원이었다.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한 기타 은행별 총자산 대비 유가증권 보유 비율은 신한은행 18.7%, NH농협 17.8%, 하나은행 16%, 우리은행 15.9%였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고금리에 의한 유가증권 가치 하락의 손실을 비교적 적게 입었다. 이 역시 SVB가 시장금리 상승의 여파로 보유 채권 값이 하락해 큰 손실을 본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SVB의 자산 손실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금리가 덩달아 상승한데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채권 금리 상승은 채권값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SVB는 미국의 여타 일반은행들에 비해서도 채권 투자 비중을 높게 유지해왔다. 이는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과 IT스타트업들을 상대로 특화된 영업을 하면서 여신보다 수신에 치중해온 것과 연관돼 있다. 덕분에 SVB는 부실대출 위험을 낮추면서 우량 채권에 투자하는 등 안전하게 자산 운용을 해온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평시 같으면 긍정적으로 인식될 그 같은 방식이 고금리 시기에 오히려 위험 요인으로 작동하면서 사달이 났다.

반대로 국내 은행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경영을 해온 덕분에 뜻하지 않게 보다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추게 됐다. 지나친 예대마진으로 국내에서 여론의 질타를 받아온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금융 소비자들이 고혈을 짜 은행들의 재무구조를 탄탄히 해주는 희생양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진행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SVB 사태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SVB 사태에 대해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고강도 금융긴축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취약 부문의 금융불안이 불거져 나온 경우”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이어 “우리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한 뒤 “필요시 관계 기관들과의 공조 하에 신속히 시장안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국내 금융기관은 자산 및 부채 구조가 SVB와 다르고 유동성이 양호해 일시적 충격을 견뎌낼 기초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거론하며 “금융시장 안정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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