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 기준금리가 예상대로 0.25%포인트 인상(베이비 스텝)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면서 기준금리를 기존의 4.50~4.75%에서 4.75~5.00%로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시장의 예측은 0.50%포인트 인상(빅 스텝)이었다. 미국내 소비자물가가 6%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었다. 하지만 10여일 전 돌출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그로 인한 파장이 연준의 긴축 보폭을 움츠러들게 했다.

연준 성명에서 이전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란 표현이 사라지고 ‘약간의 추가적인 정책 강화’(some additional policy firming)가 거론된 점도 경제 환경 변화를 실감케 했다. 이는 향후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차례 정도 소폭 인상하는 것으로 연준이 긴축 행보를 마무리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UPI/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UPI/연합뉴스]

이날 새로 공개된 점도표도 그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점도표에 나타난 연준 위원 18명의 기준금리 전망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금리 수준은 5.1%(중간값)였다. 지난해 12월 FOMC 회의 직후 발표된 점도표 내용과 일치하는 값이다. 점도표상의 내년 말, 내후년 말 기준금리 예상치는 각각 4.3%와 3.1%였다.

이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과 연결시키면 연준은 다음 FOMC 회의(5월 2~3일)에서 한 번 더 베이비 스텝을 취한 뒤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란 추정이 가능해진다. 새로 작성된 점도표 또한 연준 위원 18명 중 10명이 올해 말 기준금리를 5.00~5.25%로 전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월 의장은 이날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올해 중 기준금리 인하를 전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준 위원들의)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는 시장 일각의 섣부른 기대를 잠재우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이해됐다.

연준이 이날 제시한 경제전망 자료에는 미국의 올해 말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3.3%로 표기돼 있었다. 작년 12월 공개된 직전 전망치(3.1%)보다 높아진 수치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연준은 당초 예상보다 긴축을 강화해야 한다. 이날 발표된 연준의 성명 또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6.0%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날의 연준 성명은 고물가 지속과 함께 ‘완만한 성장’, ‘일자리 증가’ 등을 동시에 거론했다. 하나같이 고물가 현상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이날 베이비 스텝을 취하면서 약간의 추가적 정책강화를 언급한 것은 금융 불안에 대한 일말의 우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이번의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은 물가와 금융 환경의 변화상을 두루 고려해 절충점을 찾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연준은 일단 지금의 금융 불안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파월 의장은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회복력이 빠르다”며 “은행들의 유동성 흐름이 안정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독특한 케이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SVB 사태를 일반 은행으로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금융 불안의 여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현실을 의식해 고물가 지속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베이비 스텝을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SVB 사태가 돌발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연준은 빅 스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일례로 파월 의장은 SVB 사태 발발 직전인 지난 8일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는 최종금리 수준이 이전 전망보다 높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었다.

이 발언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효력을 잃게 됐다. 곧이어 SVB 사태가 벌어졌고, 그 원인으로 연준의 장기적인 고강도 긴축정책이 거론된 탓이었다. 이로써 연준 책임론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연준은 금융 안정과 고물가 억제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한편 연준의 베이비 스텝 결정은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통화정책 운용에 여유를 갖도록 해준 것으로 분석된다. 연준의 빅 스텝 결정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면서 양국 간 기준금리 격차가 1.50%포인트에 그친 점이 그 이유다. 물론 기준금리 역전 자체가 불안한 요소인데다, 그 격차마저 더 벌어진 데 따른 부담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정도 금리 격차라면 2월에 이어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11일)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 더 동결한 뒤 경제 상황을 지켜볼 여지를 갖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고금리에 따른 기업과 가계의 고통이 커지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경기가 미국에 비해 안 좋은 대신 물가는 비교적 빠르게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편이다. 이런 현실도 한은의 금리 동결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국내 소비자물가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지난 2월 4.8%로 줄어들었다. 전달에 비하면 상승폭이 0.4%포인트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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