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동향이 심상찮다. 가장 큰 우려 점은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러화와 원화의 가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환율 수준 자체보다 기현상이라는 점을 더욱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원화 값은 상승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요즘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를 맴돌며 때론 1320선을 넘나들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화 약세 기조는 장기간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엔화보다도 심각한 정도다. 그 결과 올 들어 원화는 세계 주요국 화폐 중 달러 대비 환율이 상승하는 몇 안 되는 희귀 화폐 취급을 받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이상 흐름은 달러인덱스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9월 114.1까지 도달했다가 이후 대체로 하락하는 흐름을 이어왔다. 달러인덱스는 최근 102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달러인덱스는 전날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되기 직전 102를 살짝 웃돌았다. 이후엔 지수 발표의 영향으로 내려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달러인덱스는 주요국 6개 통화 가치에 연동해 매긴 달러화 가치 지수다. 수치가 높을수록 달러 가치가 올라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달러인덱스는 한 달여 전인 3월 초만 해도 105를 웃도는 수준이었으나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3월 CPI 발표 직후 달러인덱스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긴축 강화 행보를 조만간 멈추고 방향 전환(피벗)을 할지 모른다는 시장의 전망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12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CPI 상승률은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5.0%였다. 둘 모두 기대치를 밑도는 것이었다. 특히 전년 대비 상승률은 2021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것이어서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곧바로 연준의 연내 피벗 가능성이 거론됐고, 그 분위기를 타고 달러화 가치도 조금 더 하락했다.

문제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원화의 가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초 1200원대 후반에서 출발한 뒤 내려가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2월 들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310~1320원대 초반에서 오르내리게 됐다. 달러인덱스가 이달 초 이후 내림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9월 달러인덱스가 2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만 해도 원/달러 환율 상승 속도는 달러화 가치의 빠른 상승에 비하면 미미했다는 평을 들었다. 강달러 환경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던 원화가 요즘엔 가치 방어 측면에서 가장 취약한 화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경제 상황이 그만큼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구체적으로는 수출이 6개월 연속 역성장하면서 무역수지가 13개월째 적자를 보이고 있고, 결국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선 것이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사진 = 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 [사진 = 연합뉴스]

수출이 부진하고 무역수지에 이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바뀌었다는 것은 달러 확보의 주요 수단이 상실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대외결제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환 보유고가 웬만큼 확보돼 있다 할지라도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기 마련이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가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에서 비롯됐다는 것만 상기해보아도 지금 우리 경제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누구도 앞에 나서서 비상종을 치려는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발등의 불을 끄듯 하루하루 환율을 방어하는데 급급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13일 외환당국과 국민연금공단의 외환 스와프 체결도 그런 조치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조치로 국민연금공단은 해외 투자를 할 때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한국은행에서 올해 말까지 350억 달러 한도에서 달러를 빌려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계약은 즉각 원/달러 환율에 반영됐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것이 이 같은 단발적 수단일 수는 없다. 여러 요소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경상수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 나라의 경제력이 그 나라의 화폐 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달러화 약세 속의 원화 가치 동반 하락은 우리 경제에 적색불이 들어와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적색 신호를 발하는 주체는 외국의 자본가·투자자들이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수출 증대일 수밖에 없다. 인구가 적어 내수 비중이 작은 우리로서는 제조업을 기반 삼아 수출에 진력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그러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이들답게 비상시엔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국가경제의 활력 회복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의 위기에 대한 무감각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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