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다. 불합리한 요금 체계가 에너지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져 있지만 느긋하기만 하다.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데 반대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요금 인상 필요성을 알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최대 걸림돌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우유부단이다. 요금 인상 저지의 대외적 명분은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방만 경영이다. 여당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문제를 들먹이며 그들 공사에 자구책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두 개 공사가 먼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영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사태의 시급함을 고려하면 옹색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요금 인상이 최후의 수단임을 강조하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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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많기로 치면 자구책 제시를 미적거리는 한전과 가스공사도 오십보백보다. 이전 집권세력의 오판과 정치적 이해 탓에 경영상황이 악화된 측면이 강하다 할지라도 저조한 실적에 맞게 기득권을 감하려는 성의를 보이는 게 당연하건만 아직도 그런 자세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태 악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그것대로 풀어가야 할 별개의 문제일 뿐이다. 그걸 억지로 끌어다 붙여 이유로 들이대며 요금 인상을 미루는 것은 당당한 국정 운영의 자세가 아니다.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수용가 불만이 두려워 결단하지 않는다면 국정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의 전기·가스 요금 인상 보류가 가져다주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심각하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한전과 가스공사가 작년 한 해 동안 누적시킨 적자와 미수금만 해도 40조원이 훌쩍 넘는다. 한전의 적자가 32조,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8조 이상이다. 이들 두 개 공사의 적자와 미수금이 산더미처럼 쌓인 결과 하루 이자비용만 50억원이 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두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특히 심각한 것이 전기료 문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전은 올해에 12조~14조원의 적자를 추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의 30%보다는 다소 줄었다지만 원가보다 상당폭 싸게 전기를 공급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적자는 나날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전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전기 관련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송전 시설 등 관련 분야 설비의 유지·보수에 문제가 생겨 대형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압적인 에너지 요금 억제가 언젠가 요금 폭탄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이미 지난 겨울에 겪은 ‘난방비 폭탄’ 사태를 통해 그에 대한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전기요금 폭탄이 터질 경우 그 파괴력은 난방비 폭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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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인상을 망설일 경우 사회 전반에 걸쳐 에너지 낭비 습관에 대한 경각심이 약해진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수용가들은 요금 폭탄을 맞고 나서야 한 발 늦게 에너지 절약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실 2분기 전기요금은 늦어도 지난 3월까지는 결정돼야 했다. 우리는 2021년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실시하면서 새로운 분기 시작 전에 해당 분기의 전기요금을 미리 결정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2월을 넘기기 전에 올해 1분기 전기요금 인상(kWh당 13.1원)을 결정했었다. 1분기 요금 인상폭을 13.1원으로 잡은 것은 올 한 해 동안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올려야 한전의 재무상황 개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을 달성하려면 올해 전기 요금을 매 분기 13원 내외씩 올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2분기부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전의 적자 누적이 워낙 심각해진 상황이라 전기료 인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에너지 연동제에 준해 요금 조정을 하고 있는 가스요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8조 남짓이던 가스공사 미수금은 올해 1분기에 12조로 불어났을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렸다. 마침 지금은 에너지 요금을 인상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점이기도 하다. 난방용 에너지 수요가 크게 줄었고, 냉방기도 아직은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는 시기다. 어차피 올려야 할 요금이라면 나중에 폭탄을 맞기보다 미리미리 경각심을 키우며 충격을 분산시키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에너지 산업 생태계 유지와 한전채 남발로 인한 자본시장 불안감 증대 위험까지 고려한다면 에너지 요금 인상은 빠를수록 좋다고 할 수 있다.

행여나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요금 인상을 미루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를 키워 곪아 터지게 하는 것보다 국민들을 향해 고통을 참아 달라 설득하며 적시에 해결책을 구사하는 것이 한정된 재화로 사회 전반의 복리후생을 최대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게 지지율 상승에도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여당은 국민들의 현명함을 의심하지 않기 바란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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