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여러 성과를 거뒀다지만 양국 간 경제 현안만 놓고 보면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화려한 만찬 행사 못지않은 말의 성찬은 있었으나 실속은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한 평가일 듯하다.

요는 우리 기업들에게 미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일명 칩스법)의 충격을 방지 또는 완화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두 나라 모두에게 시기적으로 의미심장한 행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경제적 측면에서도 70년간의 끈끈한 우의를 재확인할 정도의 호혜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성과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총평하자면 미국은 선방했고, 우리는 상대로부터 립서비스 세례만 잔뜩 받은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고 할만 했다. 테슬라 오너인 일론 머스크가 윤석열 대통령 숙소를 제 발로 찾아와 한국 투자에 관심을 표명했고, 소형모듈원전(SMR) 사업과 관련해 현지 기업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 등을 성과로 평가한다 할지라도 정부 대 정부 측면에선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특히 아쉬운 대목은 논란 많은 IRA 및 칩스법의 독소조항이 한국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받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성과가 없다 보니 야당 쪽에서는 이들 사안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의문은 윤석열 대통령 방미 전부터 제기됐다. 방미 수일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두 개 법안의 문제점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구체적인 건에 대해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번 회담의 핵심 부분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실시된 공동성명 및 워싱턴선언 발표,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등이라 할 수 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담의 성과는 이날 백악관 뜰에서 열린 이들 이벤트에 담긴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나라 정부 간 협상에서 도출된 성과에 관한 한 이날 발표된 성명과 공동회견 내용에 담긴 것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워싱턴선언이야 안보와 관련된 것이니 차치하기로 하고, 가장 큰 아쉬움은 공동성명에 IRA 및 칩스법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문의 공동성명에는 두 법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기울여온 노력을 평가했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두 개의 법이 미국 내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두 정상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기울여온 노력’이 무엇인지부터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협의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대강의 설명조차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그냥 성명에 관련 주제가 포함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집어넣은 문구였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두 정상이 각각 두 개씩의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관련 질문이 던져졌으나 알맹이 있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합의된 것이 없으니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RA 및 칩스법이 한국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국이 잘 되는 게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며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성장을 막으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한국이 미국의 가장 가치 있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도 동시에 강조했다. 상대를 추어주는 듯한 내용이었지만, 동문서답식 대응으로 질문의 핵심을 비켜가려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의 답변이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반도체 관련 정책이 한국에도 피해를 주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국에 피해를 주려고 설계한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발생한 공급망 혼란을 계기로 미국의 반도체 확보를 강화하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는 얘기였다. 이 역시 동맹국의 현실화되고 있는 고통을 애써 외면하려는 화법으로 받아들여졌다. 추후 진정성 있는 협의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떠안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내용의 답변들이었다.

IRA와 칩스법은 대미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 및 반도체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이들 기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반도체의 경우 초과이익 환수, 사실상의 산업기밀 제공 의무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중 칩스법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방지를 명목으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우리 기업들을 옥죄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한시적으로 유예해주었다지만 그 시효도 올해 10월이면 만료된다.

이 모든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소되길 바랐으나 성명과 회견을 통해 드러난 성과는 추상적인 것들뿐이다. 정부가 장황하게 부연해가며 내세우는 성과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상회담은 아쉽게 끝났지만 실무 선에서의 협의는 이제부터 본격화돼야 한다. 정상회담이 큰 틀의 합의와 방향제시를 이루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성과가 없었던 만큼 실무 접촉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의 유예기간을 조정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기왕이면 한·미 간 친교가 무르익은 시점을 활용해 유예기간 재연장 등의 단기 처방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집중해주기를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