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말 말고 와”

박영수 특검의 이 한마디가 윤석열 검사를 대통령 자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후일담으로 공개된 이 말은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게 된 박 특검이 그 즈음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에게 전화로 한 말이었다. 특검팀에 합류하라는 검사 특유의 화법이었다. 특검팀 합류는 윤 검사를 정치적 대어로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를 가장 뜨겁게 지지한 쪽은 진보 진영이었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한 열의를 보고 그를 자기편이라 착각한 것이 윤석열 검찰총장 및 대통령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다.

특검팀 합류 당시 윤 검사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직에서 밀려난 뒤 대전고검으로 좌천돼 있었다. 그 시절, 윤 검사는 박근혜 정권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출신으로서 지방 지청장직도 달갑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자리마저 잃고 도성에서 더 먼 곳의 평검사로 발령 났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사직하지 않고 버텼다. 그의 검찰에 대한 애착과 뚝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비록 지방 검찰청 평검사였지만 그에겐 이미 강골 이미지가 씌어져 있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진행되던 중 나온 발언이 결정적 배경이었다. 그때 나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의 어록에서 가장 핫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명구(名句)의 저작권자는 따로 있었다. 정갑윤 전 의원도 훗날 농반진반으로 자신이 그 발언의 원저작권자라는 주장(?)을 편 적이 있다. 위 발언은 당시 국감 때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혹시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공격하자 그에 반박할 목적으로 얼떨결에 튀어나온 것이었다. 정확한 워딩도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였다. 답변의 주제문이 아니라, 뒤의 주제문을 수식하게 하기 위해 동원된 부사절(副詞節)에 불과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이 한마디로 그는 강골검사로서의 이미지를 보다 확실히 굳힐 수 있었다. 앞서 그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의 실무책임자로서 검찰 수뇌부의 만류를 무릅쓴 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 이 일로 그는 정직 징계와 좌천을 연이어 당했다.

윤 대통령이 남긴 어록 중 대중들의 입에 자주 회자되는 다른 하나는 “(검사가 수사로 보복을 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는 말이다. 국회에서 법무부 장관과 설전을 벌이며 남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모두 맞는 말들이다. 법 집행에 사감이 깃들어서는 안 되고, 검찰총장이 비록 법무부 장관의 지휘와 인사제청권 영향권에 있지만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의 수장인 건 분명하다. 검찰청 수장의 직급을 기타 청 단위보다 높여 장관급으로 하고, 공식 직함을 청장이 아닌 총장으로 정한 데는 그런 사회적 기대가 깃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표현 방식인데, 윤 대통령의 말투는 꽤나 투박하고 거칠다. 한동안 유행했던 말을 빌리자면 ‘검사스럽다’고 평할 수 있다. ‘검사스럽다’라는 시쳇말은 과거 평검사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맞짱토론을 벌인 일에서 탄생했다. 쓰임새를 토대로 추정하자면 ‘매너가 세련되지 못하고 위아래 없이 건방지다’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실제로 검사들의 말투는 투박한 편이다. 오래 전 취재를 위해 난생 처음 검사실에 들어갔다가 포승줄에 묶인 이들이 연출하는 살풍경에 내심 움찔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로 하여금 검사들의 언행이 투박해진 이유를 다소나마 이해하게 해준 장면이었다. 당대의 기자들에게도 비슷한 면이 있긴 했지만 필자가 한때나마 경험한 검사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은 대체로 상명하복에 철저하고 젠체하며 폭탄주를 거리낌 없이 들이켜는 이들이었다.

그런 문화가 몸에 밴 탓일까, 언행만 놓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협객집단의 우두머리 같은 인상을 준다. 야비한 양아치와 스스로를 구별하며 나름의 정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집단의 보스처럼 비쳐질 때가 많다. 윤 대통령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지점도 여기가 아닌가 싶다. 호방해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다수의 공감을 얻는 데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이런 특징은 검사 개개인을 하나의 기관으로 인식하면서 그들에게 주관적 판단보다 기계적 기능성을 강요하는 검사동일체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역사 속에 등장했던 협객집단들은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혁명세력들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부정한 권력에 맞서 불의를 응징하는 데 있어서는 통쾌함을 안겨주곤 했지만 집권 후 정의구현 방식이 거칠고 때론 잔인했다는 게 늘 문제였다. 그래서 혁명가는 말 위에서 생을 마쳐야 영원히 이름을 빚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을 혁명가라 할 수는 없지만 유협집단의 우두머리 스타일이라는 점엔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 여겨진다. 그런 면모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통해 심심찮게 드러난다. 박영수 특검팀 합류 요구에 선선히 응했는지는 모르지만, 의기만 투합되면 “오라면 와” “하라면 해”라는 식의 상명하복 문화를 당연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선배로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후배로서 그런 말을 듣는 것도 그에겐 부자연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의기투합’에 의한 인사야 어느 정권에서든 있었던 현상이지만 주요 대상이 검찰이고 그 도가 지나쳐 나온 평가가 ‘검찰공화국’일 것이다. 문제는 갈수록 뚜렷하게 느껴지는 상명하복식의 ‘검사스러운’ 국정 운영이다.

대표적 사례가 대일·대미 외교에서 나타나는 일방통행식 정책결정이다. 사례를 일일이 거론할 것도 없이 총체적 느낌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런 줄 알아” 하는 식의 정책방향 설정이 잦은 듯 보인다. 사전 협의나 대국민 설득은 늘 그 다음이다. 그마저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국무회의 모두발언 등의 형식을 빌린 훈시성 설명을 통해서다. 툭하면 근엄한 얼굴 사진과 함께 대통령 담화문이 발표되곤 했던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이다.

특히 심각한 논란을 낳은 것이 대일외교다. 잡음 발생의 원인은 단순명료하다. 국민들의 집단적 역사인식을 아예 묵살한 채 소수 엘리트 권력집단의 신념대로 밀어붙인 게 화를 키웠다. ‘미래’를 키워드로 제시했지만 ‘과거’를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국민들의 역사인식은 아예 안중에 없었다.

밀어붙이기 행태 중에서도 압권은 김태효 안보실 차장이 기자들에게 말한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였다. 미국 정보기관들의 대통령실 도감청 사태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내보인 반응이었다. “같은 주제로 물어보면 떠나겠다”는 말도 남겼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런 줄 알고 따라와”하는 투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김 차장의 그런 태도가 기자 개인이 아니라 전국민을 향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기자와 고위 공직자 간의 문답이 개인 대 개인의 사적 대화일 수는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대통령이고 관료고 너나없이 대개가 그런 식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뉴스 등을 통해 김 차장의 오만한 발언 장면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외교 사안에서 비롯되는 모든 잡음은 국민정서를 헤아리지 않는 정권의 오만과 관련이 있다. 대통령이나 관료가 지사형 목민관을 자처하려 하는 한 잡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들에게 바라는 공직자상(像)은 왕조시대의 목민관이 아니라 공화국 시대에 어울리는 공복이다.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 또는 소수 엘리트 권력집단이 국민들을 향해 “잔말 말고 따라와” 하는 행태를 보이는 게 잡음의 출발점이다. 이는 국정운영에 대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유협집단의 우두머리가 휘하를 다루듯 상전인 국민을 대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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