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하락했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7% 상승했다. 지난해 7월 6.3% 이후 꾸준히 하락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침내 3%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가 3%대 물가 상승률을 경험하기는 지난해 2월(3.7%) 이후 1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상승률 곡선의 내리막 경사가 가팔라졌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3개월 동안 0.4%포인트, 0.6%포인트, 0.5%포인트씩 하락했다. 3개월 동안의 하락폭 합이 1.5%포인트나 됐다.

이상에서 보듯 전체 소비자물가 지표상 흐름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전보다 커진 물가 흐름의 불확실성이다. 일단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만 놓고 보면 물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개돼가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이라 단정할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당장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기저물가의 더딘 하락이다. 지난달엔 근원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즉,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2020년=100)을 기록해 1년 전 대비 3.7% 상승했지만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그보다 훨씬 높은 4.6%의 상승률을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또한 전체 물가지수보다 높은 상승률(4.0%)을 나타냈다.

근원물가가 이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변동성이 비교적 작은 품목들의 물가 흐름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꾸어 말하면 농산물이나 석유류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의 물가가 요동치면 근원물가 이상으로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급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실제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줄이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석유류였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16.4% 하락했다. 내림세는 석 달째 지속됐다. 4월 하락률은 2020년 5월의 -18.7% 이후 가장 큰 폭에 해당한다. 석유류 제품의 전체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여도는 -0.90%포인트였다. 석유류 제품들이 제자리걸음만 했더라도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후반에 머물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석유류 제품의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여도는 지난 2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점차 그 폭을 키워왔다. 2, 3월의 기여도는 차례로 -0.05%포인트, -0.76%포인트였다.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자동차용LPG 가격은 차례로 17.0%, 19.2%, 15.2% 하락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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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흐름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또 하나의 주요인은 심한 상승압박을 받고 있는 전기·가스요금이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이들 요금은 지난 3월 말까지 한 번 더 인상됐어야 했다. 하지만 민심 동향의 악화를 우려한 정부·여당이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가 먼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요금 인상을 억제시켰다.

그 결과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예정보다 늦은 시점인 이달 중 단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전의 경영정상화계획을 토대로 인상 경로를 밟아간다고 가정하면 다음 달 말까지는 3분기 요금인상도 실시돼야 한다. 한전은 올해 중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올려야 재무상황 정상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말경 올해 1분기 요금 인상(kWh당 13.1원)을 단행했다. 올해 인상 목표치를 채우려면 2분기 인상분을 포함해 연내에 kWh당 38.5원을 더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심의관도 통계결과를 발표하면서 물가 흐름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총지수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추세”라고 전제한 뒤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기나 국제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 환율 등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타 품목별 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상승률이 둔화되는 모습을 드러냈다. 개인서비스는 전달(5.8%)보다 높은 6.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은 외식물가(7.6% 상승)였다. 외식물가 상승률은 한 달 전보다 0.2%포인트 확대됐다.

반면 가공식품은 전달의 9.1%에서 7.9%로, 농축수산물은 전달 3.0%에서 1.0%로 상승률이 낮아지는 흐름을 나타냈다. 전기·가스·수도 요금도 23.7% 올랐지만 상승폭은 전달(28.4%)보다 낮아졌다. 고등어(13.5%) 등 수산물 가격 상승률은 6.1%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집계해 체감물가로 통칭되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7% 상승했다.

한국은행도 당분간은 근원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비해 더디게 둔화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그같이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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