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First Republic Bank)가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은행에 인수되었다.

미국 은행 간 매각인수는 2008년 부실 주택채권의 금융위기 사태 후 자주 있는 일이다. 미국 최대 은행이 상당히 큰 은행을 또 인수해 몸집이 아주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 인수를 불러온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폐쇄 조치에 비하면 이런 지적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지역은행 본부가 소재한 캘리포니아 주 당국은 4월 30일 자정 막 지나 은행이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보고 폐쇄 명령 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법정관리 아래 두었다. 퍼스트 리퍼블릭의 영업불가 폐쇄는 7주 전 3월 10일의 실리콘 밸리 뱅크에 이어 세 번째로 비정상적으로 은행폐쇄 발생의 간격이 짧다. 미국 은행 금융의 병적 증후일 수 있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분명히 병 증상인 것이 먼저 영업불가 조치를 받은 실리콘 밸리 은행(SVB) 그리고 3월 12일의 시그니처 뱅크(Signature Bank)에 뒤이어 5월 1일 세 번째 폐쇄 조치된 이 퍼스트 리퍼블릭 등 두 은행은 그저 그런 은행이 아니라 이런 불명예스런 조치를 받은 은행으로서는 규모가 역대 두 번째 자리를 다툰다는 사실이다.

은행의 영업불가 폐쇄는 일반 기업의 파산 조치를 연상시키지만 은행은 개인, 가계와 기업이 맡긴 ‘피 같은’ 예금의 존재 때문에 파산 보호 신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미국서 파산법 11조는 기업이 회생 가능성을 이유로 부채의 탕감이나 상환유예를 요청하고 법원이 받아들이면 채권자는 전액이 아닌 몇 %만의 변제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가 은행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파산법 같은 것과 무관하게 무조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정해 놓고 있다. 보통 규모의 예금자를 안심시키는 방화벽이지만 은행에는 보통 예금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을 넘어서는 예금 고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은행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나 하고 지켜본다. 여차하면 돈을 빼내야 손해를 안 보는 것이다.

위험하다 싶어 예금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돈을 빼낼 때 은행은 물론 국가 경제를 흔드는 집단 예금인출의 뱅크런 사태가 발생한다. 보통 예금자도 뱅크런에 가담하겠으나 은행 위세를 높여준 돈 많은 고객들이 뱅크런을 주도해 이들이 또 은행을 뒤엎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예금자 당 25만 달러(3억3500만원)까지 연방 기관 FDIC가 무조건 상환을 약속하고 있어 그 규모가 한국의 6배가 넘는다. 연방예금보험공사는 보험에 가입한 은행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만일의 사태에 쓸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보험에 가입한 미국 은행 수는 4700개로 금융위기 당시의 반으로 줄어 그간 활발한 인수병합을 말해준다.

은행의 영업불가 폐쇄는 거의 모두 뱅크런에서 기인한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막판 은행 아닌 증권사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청산돼 2만5000명의 직원이 실직할 무렵 저축대부조합 형 은행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이 1900억 달러 예금을 향한 뱅크런를 당했다. 현금이 바닥나 인출요구를 감당할 수 없자 영업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은행업 붕괴 및 경영파탄의 실패를 자인하고 당국의 영업불가 폐쇄 조치를 받아야 했다. 워싱턴 뮤추얼은 대출과 보유 유가증권 등으로 구해지는 은행 자산이 3070억 달러였는데 당시 은행주 시총 2위였던 JP 모건이 제이미 다이먼 총수의 지휘로 이를 인수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JP모건 체이스 은행 지점. [사진 = 신화/연합뉴스]
미국 뉴욕에 있는 JP모건 체이스 은행 지점. [사진 = 신화/연합뉴스]

올 3월 9일 하루 450억 달러의 예금인출을 당한 실리콘 밸리 은행은 다음날 1000억 달러(134조원)의 뱅크런이 예상되자 10일 새벽 폐쇄 조치되었고 주식거래 중지와 함께 FDIC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자산이 미국 전체 16위인 2090억 달러로 경영파탄의 영업불능 조치 은행으로서는 워싱턴 뮤추얼 다음으로 컸다. 실리콘 밸리 은행의 일인당 예금 규모는 125만 달러(16억5000만원)로 중소 규모의 지역은행 평균치 18만 달러를 크게 웃돌아 고액 예금자가 많은 은행의 뱅크런 위험을 잘 말해주었다.

실리콘 밸리 은행(SVB)은 테크 벤처 및 스타트업 기업들이 재택 위주의 팬데믹 근무 형태에 힘입어 돈을 많이 벌자 이 돈을 유치하면서 예금이 팬데믹 직전 620억 달러에서 2년 여 후인 2022년 3월 기준 2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문제는 미국 인플레가 치솟으면서 미 연준이 0~0.15%인 기준금리를 2022년 3월부터 급속히 연쇄 인상하면서 이런 급성장 은행의 금융자산 가치가 땅에 떨어져 예금인출에 대응하는 현금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SVB 폐쇄 하루 반 뒤에 뉴욕 주 당국이 자산 규모 1100억 달러의 시그니처 은행에 대한 뱅크런 우려가 커지자 역시 폐쇄 조치했다. 이에 미 재무부와 연준 및 FDIC는 3월 12일 일요일 ‘구조적 사태’의 예외성을 들어 이 두 은행의 예금자들에게 예금 규모를 불문하고 전액상환을 약속했다. 이런 긴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수십, 수백 개의 은행이 뱅크런을 당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FDIC는 SVB 인수를 추진했지만 당국의 예금 전액상환에도 인수자를 찾지 못해 3월 17일 은행의 11조 파산보호 신청을 허락했다. 당국이 예금상환을 떠맡은 만큼 이 파산신청은 반쪽짜리라고 할 수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더 이상 예외적인 전액 예금상환은 없다고 말했다. 돈 많은 예금자 주도의 뱅크런이 일어날 기색이 없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은행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뱅크런 대신 보다 큰 은행으로의 예금 이동이 물밑에서 소용돌이쳤다.

SVB처럼 돈 많은 예금자가 많은 캘리포니아 주 기반의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위기가 3월 15일부터 수면으로 올라왔다. SVB 같은 명명백백한 뱅크런 대신 끊임없는 예금인출 소문에 시달리면서 주가 하락의 수렁에 빠진 것으로 옐런 장관의 은행예금 보호 추가를 시사하는 발언에 잠시 상승하기도 했지만 퍼스트 리퍼블릭 주가는 하락세 스무날 뒤인 4월 초에 벌써 80%나 떨어져나갔다.

규모가 대형급에 육박하는 이 은행은 자체로 인수자를 찾는 데 실패하고 4월 24일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3월에만 예금이 1000억 달러나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주 마지막 장인 4월 28일 주가가 더 떨어져 3월 초 SVB 사태 당시의 115달러가 3.50달러까지 98%나 하락했다. 증시 마감 후 신문에 퍼스트 리퍼블릭의 영업불능 폐쇄 조치, FDIC 법정관리 그리고 JP 모건 등 대형 은행들의 인수 입찰 등의 수순이 보도되었다. 하루 반 지나 월요일인 5월 1일 새벽 5시에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에 대한 FDIC 법정관리 및 JP 모건 체인스 은행에 FDIC의 즉각 매각이 발표되었다.

당일 오후부터 8개 주 84개 지점이 JP 모건 체이스로 문을 다시 여는 퍼스트 리퍼블릭은 1분기 기준 자산이 2290억 달러로 미 전국 14위로 SVB보다 크다.

JP(존 피어폰트) 모건 체이스 은행은 FDIC의 보험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지 않고 퍼스트 리퍼블릭의 모든 920억 달러 예금을 떠안으며 대출과 유가증권으로 이뤄지는 자산 거의 대부분을 2030억 달러로 사들인다. 이 은행의 주식투자자와 비담보 채권자들은 SVB 때와 마찬가지로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모건 체이스는 대신 예금에서 나오는 손실을 FDIC와 공동 부담하며 자산 매입을 위해 이 기관으로부터 500억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인수에 103억 달러 정도만 FDIC에 지불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2008년에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했던 JP 모건 체이스는 이처럼 신속하게 미국 ‘실패’ 은행 2위 퍼스트 리퍼블릭을 인수하기 전에 이미 자산 총계가 3조7000억 달러(4900조원)로 미국 톱이었다. 예금 총액도 24조 달러로 그 다음의 뱅크오브아메리카를 5000억 달러나 앞질렀다. 제이미 다이몬은 계속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연방예금보험공사 FDIC는 퍼스트 리퍼블릭 처분에 13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전액예금 상환의 SVB와 시그니처 때의 손실까지 합하면 모두 355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금융위기 후 은행으로부터 받았던 보험료 전액 341억 달러를 웃도는 손실액이다.

그럼에도 예금 전액상환의 추가 약속도 없이 4600여 개 미국 중소 지역은행의 뱅크런 위기 사태를 마무리했다는 평가가 많이 들린다.

김재영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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