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택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발언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전세제도가 수명이 다했다는 취지를 밝히며 내놓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존 전세제도를 대체할 모종의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원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세제도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수명을 다한 만큼) 임대차시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큰 틀의 공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 논란거리인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처방이 마무리되는 대로 임대차시장의 판 자체를 갈아치우는 작업에 돌입할 뜻을 내비쳤다. 그 작업을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전세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전월세 전환율이나 가격, 기간을 꿰맞추는 억지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의 표현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정권에서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임대차3법의 폐단을 지적하고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3법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3가지 민감한 내용을 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원 장관이 이번에 특히 강조한 것은 전세제도 수정 필요성이었다. 그는 “보증금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대·매매 가격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 맞물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대차3법은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회초리 하나로 강요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꼬집어 비판했다.

원희룡 장관은 또 “그간의 잘잘못을 떠나 앞으로 예상되는 임대차시장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복기해 근본적인 제도를 내놓을 때가 됐다”며 “이 문제를 판 위에 올려놓고 제대로 큰 그림을 짜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현행 전세제도가 부동산 갭 투자의 도구로 전락해 집주인들이 투자 차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고, 심하게는 조직적인 사기범죄를 판치게 했다는 인식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 장관은 기자들에게 “전세제도가 임대인이 세입자한테서 목돈을 빌린 것인데 갚을 생각을 안 한다는 건 황당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부작용을 해소해야 하는데 전세제도가 워낙 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아온 만큼 고치되 더 큰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 여러 방안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임대차3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전월세신고제 계도기간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주택임대차 신고라는 단편적 행정에 역량을 쏟는 대신 임대차시장 전반을 개선하는 큰 틀의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대차3법의 하나인 전월세 신고제는 보증금이 6000만원을 넘거나 월세가 30만원을 초과할 경우 계약일 이후 30일 이내에 행정관청에 계약 내용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신고 의무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부과되며 이를 어기면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 제도는 2년 전부터 시행됐으나 이달 말까지는 유예기간으로 설정돼 그간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국토부는 유예기간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유예기간이 연장됐어도 신고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신고의무를 이행치 않더라도 과태료는 앞으로도 1년 동안은 부과되지 않는다.

원 장관의 위 발언들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쏠린 대목이 전세제도의 근본적인 개편 의지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원 장관은 기자들과 대화하는 동안 “큰 그림을 짜보겠다는 각오”를 밝히면서도 전세제도를 대체할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큰 그림을 그릴 때 고려할 점으로 ▲보증금 제도를 어떻게 할지 ▲임대·매매 가격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관리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등을 강조했을 뿐이다.

국토부가 구상중인 전세제도 개선안으로 우선 상정할 수 있는 것엔 ‘에스크로(Escrow)’ 제도가 있다. 에스크로는 전자상거래 과정에서 활용되는 대금 지불 방식 중 하나다. 물품 구매자가 대금을 제3자에게 송금하면 판매자가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상품을 발송하고, 구매자는 상품을 수령한 뒤 수령사실을 제3자에게 알리면, 비로소 제3자가 판매자에게 대금을 송금하는 거래 방식이다. 물건을 보내지 않고 돈만 받아 챙기거나 상품을 받고도 대금을 보내지 않는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활용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현행 공인중개사법에도 시행 근거를 두고 있다. 동법 31조엔 공인중개사가 주택 거래와 관련된 계약금·중도금·잔금을 거래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금융기관 등에 예치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근거로 전세계약의 경우 새로운 임차인이 지불하는 보증금을 금융기관이 받은 뒤 나가는 기존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방안, 전세계약 종료시까지 보증금을 예치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재산권 제약 및 에크로 수수료 추가 발생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하거나 전세금반환 보증보험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이 강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행 전세금반환 보증보험은 전세가율이 낮아서 전세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집을 임차할 때나 가입이 용이하다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자유시장 원리에 부합하는 현상이긴 하지만 정작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큰 주택에 임차로 들어가는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점에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부터 주택임대차법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해왔다. 이 연구는 올해 안에 마무리돼 내년 초 윤곽을 드러낸다. 국토부는 이를 토대로 임대차제도 개선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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