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가 8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후반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반기로 가면서 경제가 점차 좋아진다고 전망하면서 “터널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경제사령탑의 입에서 모처럼 희망적 관측이 나와 듣기엔 좋았지만, 지금의 실물경제 상황을 고려하자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물가 관련 발언이야 데이터에 의한 것일 테니 체감과 별개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상황 전반에 대한 낙관론은 가계나 기업 등 정부 외 경제주체들의 인식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사실 물가만 놓고 보더라도, 수치상으론 맞을 수 있겠지만 추 부총리의 발언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세계는 지금 예상 외로 길어지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고민하고 있다. 서방 언론들이 진작부터 ‘끈끈한(Sticky)’이라는 수사를 붙인 게 지금의 인플레이션이지만 누구도 이 정도로 끈질길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측 실패 논란에서는 세계 통화정책을 선도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도 자유롭지 못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비판론자들은 연준이 2021년까지도 인플레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을 했다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해 무리수를 두었다고 지적한다. 연준이 뒤늦게 ‘빅 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번갈아 밟을 만큼 급속히 기준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미국 및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올 들어 불거져 나온 금융불안의 원인을 두고도 갑작스레 강도를 높인 연준의 긴축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초기 진단 실패에 따른 조심성 때문인지 연준 관계자들은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리면서도 ‘피벗’(기준금리 인하로 방향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적지 않은 연준 관계자들은 오히려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실정이다.

연준 기준금리 추가 인상론은 최근 들어 그 빈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월가나 국내 전문가들 상당수도 연준이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때 기준금리를 한차례 더 인상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달 13~14일(이하 현지시간)의 FOMC 회의를 건너뛰고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을 시도할 것이란 얘기다.

이런 전망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4월까지도 4.9%를 기록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기준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의 단기 국채 금리 동향도 심상치 않다고 한다.

때마침 캐나다의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BOC)이 지난 7일 기준금리를 깜짝 인상해 세계적으로 긴축 기조가 다시 강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키웠다. BOC는 지난 3월 주요국 가운데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해 미국 등 선진국들의 기준금리가 정점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키워주었던 곳이다. BOC는 그 다음 달 통화정책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4.50%로 동결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피벗 가능성을 엿보는 듯했던 BOC도 이달 7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4.75%로 한 단계 인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일은 호주중앙은행(RBA)이 최근 두 번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과 맞물려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RBA는 지난 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했다. 그 결과 호주의 기준금리는 4.1%로 올라섰다.

이들 두 나라가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자 연준이 7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이란 전망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서 추가 인상 쪽으로 바뀌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8일 현재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은 연준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70% 이상으로 집계하고 있었다.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30% 언저리였다. 눈여겨 볼 점은 한 달 전보다 기준금리 동결 확률이 10%포인트 이상 낮아졌고 대신 기준금리 인상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기준금리 인상론이 다시 힘을 받는다는 것은 시장에 고물가 현상이 한동안 더 이어질 것이란 인식이 확산돼 있음을 말해준다.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것이 미국 단기 국채 금리의 우상향 흐름이다. 단기 국채 금리는 중앙은행 기준금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올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강력한 엘니뇨 등 기상 이변도 세계적으로 고물가 현상을 강화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이 빈번해지면서 곡물 생산이 크게 줄고, 식재료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과 연계돼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댐 폭파 사건도 세계적 곡창인 우크라이나의 농지를 황폐화시켜 세계 식량난과 곡물가 인상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이 같은 세계적 동향은 국내 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소비자물가가 주요국들에 비해서는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지만 아직 안정권에 이르지 못한 만큼 언제든 상황이 악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은 당국이 면밀히 물가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인상 요인을 미리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도 나름의 판단이 있겠지만, 물가 흐름을 지나치게 낙관하다가는 정책 시행에서 오류가 저질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도한 낙관론이 시장에 그릇된 메시지를 주는 것도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경제상황 전반의 호전은 높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소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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