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꾸준히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동통계국은 자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4.0%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전달(4.9%)보다 현저히 줄어든 상승률로서 이는 2021년 3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나타난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 추이를 놓고 보면 미국 도시 거주자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일관된 우하향 흐름을 나타내왔음을 알 수 있다. 작년 6월 9.1%까지 치솟은 상승률은 그 이후 한 차례도 역진하는 일 없이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번 달 상승률은 전달치보다 0.9%포인트나 낮아졌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4.0%란 수치엔 착시 요인이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 비교 시점인 작년 5월 미국의 CPI 상승률이 8.6%에 이르렀을 만큼 높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교 시점의 수치가 워낙 높았던 탓에 이달 상승률이 수치상으론 덜 높게 산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꽤나 높았던 작년 5월에 비해서도 소비자물가가 4.0%나 더 올라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사진 = AP/연합뉴스]
[사진 = AP/연합뉴스]

같은 맥락으로 추정하자면 다음 달 발표될 6월 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 또한 비교적 양호한 수치를 내보일 가능성이 크다. 비교 시점인 작년 6월이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측면에서 정점(9.1%)을 찍은 때였던 탓이다.

이 같은 한계를 최소화하면서 물가의 현재 동향을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전월 대비 CPI 상승률이다. 미국 노동부도 이런 이유로 물가지수 발표 때 으레 전월 대비 상승률에 초점을 맞춘다. 미 노동부는 이번 발표 때도 첫머리에서 “5월 CPI가 전달의 0.4%에 이어 0.1% 상승했다”는 표현을 썼다.

미 노동부가 부연 없이 ‘물가가 몇% 상승했다’고만 표현하면 전달에 비해 물가가 그만큼 올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와 달리 1년 전 대비 상승률을 말할 때는 반드시 ‘over the last 12 months’라는 전제를 붙인다.

또 하나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근원CPI다. 미 노동통계국이 말하는 근원CPI는 음식·에너지를 제외한(less food and energy) 소비자물가지수를 의미한다. 근원CPI는 돌발적으로 변동성을 키우는 두 가지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물가의 기조적 변화를 최대한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 따로 집계된다.

이번에 발표된 미국의 5월 근원CPI 상승률은 비교적 높은 수준인 0.4%였다. 물론 전월 대비 상승률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전달치와 동일했다. 이들 수치는 미국의 기조적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 AFP/연합뉴스]
[사진 = AFP/연합뉴스]

미국의 음식·에너지 제외 근원CPI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이래 줄곧 0.4%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석 달 동안에는 상승률이 0.4%선에서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월간 CPI 상승률 0.4%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5월 근원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5.3%였다.

지난달 미국 도시민들의 소비자물가를 주도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중고차와 주거비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고차와 트럭’ 품목의 소비자가격이 전달보다 4.4% 상승했고, 주거비는 전달에 비해 0.6%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품목의 종합적 상승률이 0.1%로 집계된 것은 에너지 가격이 한 달 전보다 3.6%나 낮아진데 따른 결과였다. 에너지 항목을 구성하는 요소인 가솔린과 에너지상품 가격은 전달보다 각각 5.6%씩 내려갔다.

5월 CPI 상승률이 둔화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물가 수준 자체가 여전히 높다는 점도 문제다. 상승률이 둔화했다는 것은 가파름의 정도가 줄었을 뿐 아직도 물가 오름세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약해졌다는 오름세마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연간 상승률 목표치(2%)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라면 정상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탓에 전문가들은 연준이 14일 끝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되 추후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에서는 ‘매파적 동결’란 신조어 표현을 쓰고 있다. 연준이 물가 상승률 완화를 고려해 이번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리지만,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은 만큼 추가 인상 여지를 남겨둘 것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연준의 통화정책 회의와 관련해 요즘 현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skip(건너뛰다)’이다. 이 단어는 연준이 이달 통화정책 회의를 한 차례 건너뛴 뒤 다음 달 회의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을 말할 때 사용된다.

건너뛰는 횟수가 이 달 한차례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경우에 따라 그 횟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판단 기준은 이달 30일 발표되는 5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와 다음 달 12일 나오는 6월 CPI 등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연준은 특히 PCE 물가지수를 중요하게 여긴다. 연준이 설정했다는 물가목표 2%는 정확히 표현하면 PCE 물가의 연간 상승률을 의미한다. 연준이 PCE 지수를 중시하는 것은 이 지수가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현실적으로 물가 동향을 보여준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