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3일 기준금리를 또 동결했다. 한은은 올 들어 1월에만 기준금리를 한 단계 인상한 뒤 내리 3.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은 이번 기준금리 동결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한은이 1월 이후 열린 네 차례의 금통위 회의에서 연이어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선 기준금리 인상 행진은 끝났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먼저 한은의 금리 동결 배경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는 한은의 연이은 기준금리 동결이 일종의 고육책이라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이라면 긴축을 좀 더 강화해야 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건강 증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워낙 허약해진 몸이라 필요한 약물 사용이나 수술 등의 처방을 자제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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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상황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현상의 지속이다. 엄밀히 말하면 기준금리는 우리가 미국보다 높은 게 자연스럽다. 그 수준이 뒤바뀌면 우리 경제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달러화가 미국으로 몰려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고, 그 결과 우리의 대외 지불능력이 하락하기 십상이다. 수입물가가 올라 국내 소비자물가가 뛰어오르고 수출기업의 이익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나타나기 쉬워진다. 환율 불안은 외환보유고를 낮춰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한편 국내 증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폭은 1.75%포인트로 벌어져 있다. 이달 하순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롤 또 한 차례 올리면 양국 간 금리차는 2.00%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당장이야 별일 없을 것이란 기대 어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지만 환율 상승이 초래하는 외화 유출 압력은 확대된 금리 차만큼 커진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데다 8월 이후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 동결 결정에 담긴 고육책으로서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은으로 하여금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리게 한 첫 번째 요인으로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안 그래도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남들보다 더디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수출 주도의 개방형 경제체제를 갖춘 이상 이런 흐름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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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한 가계부채 문제도 한은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을 조이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지난 6월 한 달 사이에만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7조원이나 증가하는 등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국제금융협회(IIF)가 공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올라갔다. 조사 대상 34개 주요국(유로 지역은 하나의 국가로 분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는 역전세난 해결을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용 대출을 늘린 것에서 비롯됐다지만 꿈틀대는 집값에 ‘영끌’족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계대출의 증가는 우리 경제의 뇌관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닌다. 한은의 긴축이 끝났다는 섣부른 판단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뇌관이 터질 경우엔 영끌의 주류인 소장층부터 치명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은 이창용 총재는 5월과 7월 금통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거듭 금통위원 전원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데 공감했음을 전했다. 고금리 시대가 종결되지 않았음을 잊지 말라는 취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답답하다는 듯 “절대로 (기준금리 인상을)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듯 말하기까지 했다.

중요한 것은 고금리 시대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3.50% 수준에서 끝까지 버텨준다 해도 마찬가지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고금리가 일으키는 높은 파도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밀려들 것이란 경고를 내놓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커진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하반기부터 제대로 느껴질 것이란 뜻이다. 우리의 금융관행 상 변동금리 대출을 택한 가계가 많다는 것도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나름 사정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가계의 차입 자제 및 축소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처럼 가계대출이 무차별적으로 늘어난다면 한은의 고육책도 한계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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