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최저임금이 사실상 감소하게 됐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올해 물가상승률(3.5%)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의결된 데 따른 것이다. 1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기준)을 올해 대비 2.5% 오른 9860원으로 의결했다.

결과를 두고는 예상했던 대로 양쪽 모두에서 불만이 제기됐다. 사용자 측에서는 특히 목소리를 키워왔던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동결’ 기대가 무너진데 대한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별화와 주휴수당 폐지 등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더 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위원회 의결이 정부 고시로 확정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월급기준으로 206만740원이 된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할 경우를 상정해 추출한 값이다. 여기엔 주 15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무조건 따라붙는 주휴수당(하루치 임금)이 포함돼 있다. 즉, 주당 48시간씩 근무한 것으로 상정한 뒤 한 달을 4.35주로 잡으면 월 근무시간이 209시간에 이른다는 전제 하에 산출된 월급이 206만740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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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들은 주휴수당 탓에 주 40시간 이상의 상시근로자를 쓸 경우 최저시급이 실질적으로는 1만3000원대에 이른다며 최저임금위의 이번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불만은 노동계 쪽에서도 터져나왔다. “실질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는 게 불만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위가 의결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보다 1%포인트나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없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및 경제성장률 전망치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정됐음을 들어 소득 불평등이 더 가속화하게 됐다고 반발했다.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은 표결 직후 이번 결정으로 실질임금이 삭감됐다고 주장하면서 “임금이 올라도 오르지 않은 게 돼버린 현실에서 제일 고통받는 쪽은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물가 상승률과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을 고려하지 않아 실질임금 하락이 지속되는 상황을 도외시한 결과”라며 “소득 불평등이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은 시간에 쫓긴 나머지 밤새워 전원회의를 진행한 끝에 19일 이른 아침에야 이뤄졌다. 이번엔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밀어붙이다시피 해 결론을 냈던 지난해와는 다른 방식이 활용됐다. 노사 양측이 11번째로 제시한 각각의 수정안(노 1만원, 사 9860원)을 놓고 표결을 실시했고, 그 결과 사용자 측 최종 수정안이 선택을 받았다.

표결 결과는 9860원의 사용자안 17표, 1만원의 근로자안 8표, 기권 1표였다. 공익위원 대부분이 사용자 측의 안을 지지한 결과인 듯 보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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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은 당초 각 9명씩으로 구성된 사용자·근로자·공익 위원 중 근로자위원 1명이 빠진 가운데 진행됐다. 근로자위원 중 한명인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의 김준영 사무처장은 지난달 직권해촉됐다. 그는 지난 5월 전남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다 진압하는 경찰에게 쇠파이프 등을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노동계는 근로자위원 1명을 공석으로 둔 채 논의를 이어온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노총 류 총장은 고용노동부가 김준영 근로자위원을 강제해촉하고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위촉을 거부한 점을 문제 삼으며 “정부의 월권과 부당 개입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고위 인사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해 미리 언급한 것도 도마위에 올렸다. 그는 “최저임금위가 공정하지도 자율적이지도 않았다”며 위원회가 독립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결정은 그대로 이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쪽이든 위원회 결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수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동부가 이의를 수용해 위원회에 재승인을 요구한 전례가 없다는 게 그런 분석의 배경이다.

이변이 없는 한 노동부는 다음달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시된 최저임금은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위원회의 이번 결정에는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들의 지불능력을 고려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별화가 수용되지 않은 만큼 지불능력이 가장 낮은 업종에 초점을 맞춰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소상공인 중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사용자 측이 강조해온 내용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엔 “그만 좀 올려라”라는 소상공인들의 요구가 일정 부분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지난해의 경우 최저임금위는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4.5%)와 경제성장률 전망치(2.7%)를 더한 값에서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2.2%)를 빼는 방식으로 올해치 최저임금 인상률(5.0%)을 산출했다. 이런 방식을 올해에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4%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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