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계의 맏형’이란 옛 위상을 되찾으려 조만간 새 출발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중 최소한 삼성이 복귀한 가운데 오는 22일로 예정된 임시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전경련의 새 출발을 가장 크게 빛내줄 이벤트로는 삼성의 복귀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현재 기류로 보면 삼성은 한경협 출범에 맞춰 회원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각 계열사의 판단을 전제로 두긴 했지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삼성의 전경련 복귀 통로를 열어준 것이 그런 분석의 배경이다.

18일 준감위는 삼성이 전경련에 복귀하더라도 이전처럼 정경유착 사례가 발생할 경우 즉각 탈퇴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준감위는 전경련의 운영과 회계상의 투명성 확보 방안 등을 철저히 검토한 뒤 복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도 함께 권고했다. 이 같은 결정은 이날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린 임시회의를 통해 내려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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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감위는 지난 16일에 이어 이날도 임시회의를 열고 삼성의 전경련 복귀 문제를 논의했다. 이 논의는 지난달 전경련이 삼성에 새롭게 출발하는 한경협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함에 따라 이뤄졌다. 전경련은 삼성을 포함한 4대 그룹에 같은 내용의 공문을 일제히 보냈었다. 공문엔 전경련이 기존의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통합해 한경협이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재탄생한다는 취지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준감위의 결정은 전경련의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삼성 계열사 각각이 재량껏 복귀 여부를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 계열사들 각각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구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삼성 준감위가 계열사들을 향해 전경련에 복귀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정경유착 발생시 즉시 탈퇴’란 전제 조건을 붙임으로써 조건부 승인을 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준감위의 이 같은 단서는 전경련이 스스로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데서 비롯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준감위는 물론 삼성 계열사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목적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다.

삼성의 전경련 복귀는 다른 거대 그룹인 SK, 현대차, LG 등의 동반 내지 연쇄 복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준감위의 이날 결정이 크게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전경련은 그간 삼성 등 4대 그룹의 복귀를 위해 여러모로 공을 들여왔다. 그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한경연의 흡수·통합이었다. 이 조치는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한 이후로도 한경연 회원 자격은 그대로 유지해온 점에 착안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대로 흡수·통합이 이뤄지면 삼성 등 4대 그룹은 한경연 해산에 동의했지만 회원 자격 자동승계 여부에 대해서는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한경협 회원 자격을 지니게 된다.

결국 전경련이 공문을 통해 삼성 등에 제시한 복귀 권고는 명시적 재확인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 준감위가 사실상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림에 따라 한경연 회원사인 삼성전자와 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5개 계열사는 곧 이사회를 열고 전경련 복귀 여부를 결정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귀 움직임은 기타 대기업 집단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삼성 등의 전경련 복귀는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작부터 시민단체와 야당 등은 대기업의 전경련 복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파장을 예고했다. 이번에 삼성 준감위가 다소 두루뭉수리한 방법으로 삼성의 전경련 복귀를 허용한 것도 그런 기류를 의식한 결과인 것으로 여겨진다.

전경련을 바라보는 일반의 시선도 아직은 그리 곱다고 할 수 없다. 삼성의 전경련 탈퇴를 불러온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 일반의 뇌리에 아직 생생히 살아있다는 점이 부정적 시선의 원인이다. 보다 크게 보자면 전경련이 오랜 세월 동안 정부와 재계 간의 정경유착 고리로 작용해온 역사가 부정적 여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오는 22일 새 회장을 뽑고 간판을 바꿔 달면서 새롭게 탄생한다지만 한경협이 전경련의 흑역사를 털어내고 환골탈태할지에 대해서는 삼성 준감위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찬희 위원장이 밝혔듯이 삼성 준감위가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점도 정경유착 고리를 완전히 단절할 수 있을지였다. 이 위원장은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전경련의 인적 구성과 운영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지목했다.

해답은 여기에 모두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경련이 환골탈태를 위해 몸부림친다 한들 정치권이 이런저런 간섭과 요구를 자제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경제단체로서는 그 속성상 정치권을 ‘갑’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경련의 정경유착 단절에 대한 확고한 의지다. 삼성 준감위도 지적했듯이 전경련의 자체 쇄신안은 아직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올 듣는다. 삼성이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의 요구로 준감위를 만든 것을 참고해 비슷한 기구를 두기로 했고, 윤리헌장도 제정했다지만 실천 의지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혁신의 핵심은 유착 고리 단절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외부 개입은 물론이거나와 내부로부터의 부정한 거래 시도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 그 내용이어야 한다. 전경련은 새 출발을 하기에 앞서 이에 대한 명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중의 뇌리에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새겨져 있는 만큼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고통스러운 자구안을 마련해야만 민간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름만 바꾸는 편리한 방식이라면 여론이 인정하는 전경련 혁신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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