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한 차례 동결했다. 정례 통화정책회의 횟수로는 다섯 번째, 기간으로는 7개월째 동결이다.

이런 기조는 당분간 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24일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물가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액면 그대로 이해하자면 기준금리를 한동안 현 수준에 묶어두거나 조금 더 올릴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한은 기준금리가 3.50%로 동결됨에 따라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도 상단 기준 2.00%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역전 상태에 있는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다음 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한 단계(0.25%포인트)만 추가로 올려도 2.25%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우리로서는 다시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 셈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두 나라 간 기준금리 격차를 두고는 지금까지 여러 견해가 제시됐는데, 중론은 2% 정도를 한계 범위로 본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이 그 이상일 경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본이 해외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한국은행은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반드시 자본 유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자본 유출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간 금리가 역전돼 있다는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또 동결한 가장 큰 이유는 경기 부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는 올해 1, 2분기에 각각 0.3%와 0.6%(이상 전기 대비)의 저조한 성장 흐름을 보였다. 한은이 예상하는 올해 성장률은 1.4%다. 다수 민간 싱크탱크들은 이마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한은은 이날 이 전망치를 재확인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낮춘 2.2%로 수정제시하면서도 올해 성장률 전망은 그대로 유지했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이 맞는다 해도 이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에도 못 미치거나 겨우 그 정도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 최근의 성장 둔화는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해 1% 초반대 성장도 그나마 불황형 무역수지 흑자 덕에 순수출이 간신히 플러스를 기록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의 주요 구성요소인 순수출(수출-수입)은 올해 2분기 들어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플러스 값을 나타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성장 둔화는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 외로 미미한데다 반도체 경기마저 기대했던 것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는 현실과 연관돼 있다. 요즘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디폴트 위기가 새로이 불거지면서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미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까지 높아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분위기 탓에 정부가 주장하는 ‘상저하고’에 대한 의구심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이 한은으로 하여금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물가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3%의 상승률을 보였다. 2개월 연속 2%대 상승 흐름이면서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물가 흐름이 한은 금통위의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한은은 소비자물가가 8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뒤 연말까지 3% 내외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지난 6, 7월의 소비자물가 안정세가 기저효과에 의한 것이라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던 것이 기저효과를 일으켜 최근 수개월간 월별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작용을 했다는 의미다. 이 기저효과는 8월부터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물가안정 목표를 2.0%로 잡고 있는 한은으로서는 언제든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은 금통위는 이날 의결문을 통해 국내 물가가 상당 기간 동안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물가만 놓고 보면 아직 기준금리 인하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결문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 리스크와 성장의 하방 위험, 금리인상 파급효과,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가계부채 증가 추이 등을 면밀히 점검하며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통화정책 참고 자료로 언급한 가계부채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가계부채는 특히 최근 몇 달 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감소세를 보였으나 2분기엔 증가세로 반전됐다. 지난 2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9조5000억원 증가한 1862조8000억원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많이 증가했음을 지적하면서 대책 마련 필요성을 거론했다. 그는 미시적 대책을 먼저 활용하되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거시적인 정책도 생각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총재의 이 말은 금융 당국으로 하여금 대출 규제를 다시 강화하도록 해 본 뒤 그래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멎지 않으면 금리정책을 동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화정책을 부동산 안정에 초점을 맞춰 운용하지는 않겠다는 그이지만 부득이할 경우 기준금리 인상 방안을 동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