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총지출)이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치면 2.8% 늘어난 규모다. 예상되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4.9%)에도 못 미치는 규모라는 점에서 보면 긴축재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전년도 본예산 대비 증가율 2.8%는 20년 만에 가장 작은 증가폭이기도 하다. 정부로서는 내년도 예산안이 줄이고 줄여 짠 결과물이라 주장할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은 ‘과연 긴축재정 기조에 맞는가’라는 의문을 부를 여지를 안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절제했다고는 하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 스스로 추진 중인 재정준칙 내용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은 올해보다 2.8%(18조2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증가율이 지난 6월 재정전략회의에서 보고됐던 ‘4%대 중반’보다 2%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 총지출이 5.1% 늘어났던 것에 비해서도 증가율이 크게 축소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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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임기 내내 확장재정으로 일관했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그야말로 긴축재정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편성했던 2018~2022년 예산안 규모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매년 7~9% 수준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의도적으로 확장재정을 추구했던 것이 높은 예산 증가율의 보다 중요한 배경이 됐다.

내년도 총수입은 총지출보다 45조원 정도 적은 612조1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곧 내년도 통합재정수지가 45조원 정도의 적자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GDP 대비 3.9%까지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재정준칙 규정을 스스로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의 관리재정수지 적자 한도는 GDP 대비 3%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배제한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관리 가능한 것인 만큼 관리재정수지는 당대 정부의 나라살림 행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결과물로 인식된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역대 정부들은 대체로 통합재정수지가 균형을 맞추는 선에서 관리재정수지를 조절하려 노력해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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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의 올해 적자 비율은 2.6%다. 올해 비율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윤석열 정부가 취임 후 처음으로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올해 관리재정수지 규모를 전년(117조원, 5.4%)보다 크게 줄여 58조2000억원으로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년엔 그 비율이 3.9%로 다시 올라가게 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의 3% 초과가 위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안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어서이다. 그렇더라도 정부 스스로 자신의 재정준칙을 어긴 만큼 향후 국회를 향해 재정준칙 관련 법률 개정에 나서라고 요구할 명분이 크게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정수지 악화를 최대한 억제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2025년부터는 재정준칙안에 충실해지도록 관리재정수지를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에 예산안을 짜면서 약 23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4조원을 구조조정한데 이어 올해에도 최대한 지출을 억제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구상중인 주된 구조조정 대상은 연구개발(R&D) 및 국고 보조금 사업 등이다. 각각의 구조조정 폭은 7조원, 4조원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 절감을 위해 기획재정부는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사업 타당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재원은 약자복지와 민생사업 등에 투입될 것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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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예산안 편성에 따라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1134조4000억원)보다 61조8000억원 늘어나 1196조2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4%에서 내년엔 51.0%로 올라간다. 다만, 내년 국가채무 증가폭은 2019년의 47조2000억원 이후 가장 작은 수준이다. 우리의 연도별 국가채무는 2017년 627조원, 2018년 652조원, 2019년 699조원, 2020년 819조원, 2021년 939조원, 지난해 1033조원 등의 흐름을 보여왔다.

정부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상황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처럼 악화일로를 달리게 된 배경엔 두 가지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이유는 최근 수년간 우리의 살림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다 보니 덩치 자체가 비대해졌다는 점이다. 재정 당국이 이날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을 강조했던 것도 은연중 그런 점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관리재정수지 균형을 맞추려면 총지출을 14% 줄여야 하는데 그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지”라고 말했다. 이미 커져버린 총지출 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유지한다 해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경기 부진에 따라 나타난 세수 부족 현상도 재정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올해(400조5000억원)보다 33조1000억원(8.3%) 줄어든 367조4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내년 국세수입은 작년 세입(395조9000억원)보다도 28조6000억원(7.2%) 적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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