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상승 행진이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8일 현재 국제유가의 기준처럼 인식돼온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10월 인도분 선물가가 배럴당 90달러선에 바짝 다가섰고, 또 다른 대표 유종인 북해산 브렌트유와 국내 유가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두바이유 선물가도 90달러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 등 서방의 대표적 투자 전문기관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올라설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국제유가의 심상치 않은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 기지개를 켜려는 세계경제에 커다란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우려되는 바는 고유가가 어렵게 잡혀가는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해 주요국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 쪽으로 되돌리게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세계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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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외신 보도들에 의하면 월가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내에 기준금리를 올릴지 모른다는 전망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연준 기준금리에 대한 시장 전망을 대변해주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은 요 며칠 사이 연준의 11월 및 12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이 눈에 띄게 늘어났음을 보여주었다.

국제유가 급등은 우리 경제엔 특히 치명타를 안겨줄 것으로 우려된다. 악영향은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발등의 불은 전기요금 문제다. 안 그래도 우리 전기요금은 비현실적으로 낮아 한국전력의 적자와 거기서 비롯된 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요인이 된지 오래다. 200조원을 넘긴 한전 부채는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그 자체로 적자폭을 키우는 악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한전이 지불하는 이자는 하루 70억원 꼴이다. 여기에 국제유가 인상이 더해지면 한전은 더 큰 적자에 직면하게 되고, 그 부담은 시차를 두고 전기료에 반영돼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전기료가 과도히 인상되면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 때문에 우리의 산업 경쟁력과 생산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타격을 주고, 나아가서는 상품수지와 경상수지에 차례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출 부진 속에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늘면 순수출이 마이너스로 전환돼 결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오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수출 부진을 내수가 메워준다면 별반 문제될 게 없겠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는 그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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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제반 상황을 고려한 결과이겠지만, 최근 대형 투자은행 등 각종 분석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1%대 성장에 머물 것이란 암울한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JP모건(1.8%)과 씨티(1.8%), 노무라(1.5%)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은행과 정부는 우리의 내년 성장률이 2%대 초반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한은과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2.2%와 2.4%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들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제반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이다.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2.4%, 5월 2.3%, 8월 2.2% 등으로 거듭 하향조정해온 점이 전반적 환경이 어떤 흐름으로 전개돼 왔는지를 대변해준다. 한은이 지난달 수정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1.4%)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최근의 국제유가 추이는 ‘상저하고’에 대한 기대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수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14.8% 줄어 504억3000만 달러에 그쳤다. 수출 감소는 11개월째 이어졌다. 수입은 더 크게 줄어 461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입 감소는 지난 5~6월 경 수입된 에너지의 가격이 낮았던 것에 기인했다. 비록 불황형이지만 이로써 7월 상품수지는 흑자로 기록됐다. 경상수지 또한 석 달째 흑자를 보일 수 있었다.

한은은 이를 두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이어졌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라 할 수 있다.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국제유가가 지난 7월부터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제유가 추이는 정부나 한은의 예상 경로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의 ‘상저하고’ 전망은 국제유가가 80달러대 중반에 머물 것이란 점을 전제로 작성된 것이다. 전제가 빗나갔다면 전망치에 대한 기대치를 그에 걸맞게 바꾸는 게 정답이다.

그런 다음에라야 변화된 환경에 맞는 대응책들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전기요금 현실화 과정을 앞당겨 전력 사용량을 줄이면서 한전 재무상황을 조속히 정상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 개편 등을 차근차근 꾀해나가야 할 것이다. 원전 산업 활성화를 통해 에너지 공급 포트폴리오를 서둘러 재편하는 것도 정부에 주어진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이행하는 데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우리의 경제 환경이 역대 어느 때보다 악화돼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정부는 ‘상저하고’를 강조하며 낙관론만 말하기보다 엄중한 상황 인식 하에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 또한 내년도 예산을 경제 활성화에 최대한 기여하는 쪽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막 시작된 예산국회에 임해주기 바란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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