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현행 5.25~5.50% 범위에서 유지키로 했다. 이런 사실은 연준이 20일(이하 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끝내면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공개됐다. 연준 성명은 기준금리 동결 이유로 △지표상 경제활동과 일자리 창출이 견조하고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성명은 최근 시장에서 논쟁적 사안으로 부각된 물가안정 목표 수준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기존의 ‘2% 물가상승률’ 고수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간 시장 일각에서는 물가안정 목표를 ‘2% 이상’ 등으로 보다 유연하게 설정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었다. 이를 통해 연준이 긴축 기조를 조기에 완화할 명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위원회(FOMC)는 장기적으로 최대한의 고용과 2%의 물가 상승률을 추구한다”고 설명한 뒤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경제적 변화를 고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또한 FOMC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물가안정 목표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 경제와 소비가 기대 이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올해 중반 이후 완화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2% 수준으로 낮아지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스탠스는 이날 연준이 새롭게 밝힌 미국 경제전망을 통해 힘을 얻었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0%에서 2.1%로 크게 올려잡았다. 동시에 실업률 전망치는 기존 4.1%에서 3.8%로 하향조정했다. 미국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고용시장도 탄탄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3.2%)보다 높은 3.3%로 수정됐다. 이들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연준이 경기 위축에 대한 부담을 털고 보다 강력한 방법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서려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이번 통화정책 회의 직후 나온 연준의 반응 중 특히 주목할 시사점은 긴축이 지금보다 강화되고 고금리 유지 기간도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기자들에게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는 금리를 추가로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으로 안정됐다고 확신할 때까지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연준의 긴축 강화 의지는 성명과 함께 공개된 점도표를 통해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3개월 만에 갱신된 이번 점도표에는 올해 말 연준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이 5.6%로 표시돼 있다. 지난해 6월의 점도표상 수치와 동일하다.
이달 FOMC를 앞두고 시장은 이 부분의 변화 가능성에 특히 주목해왔다. 시장의 일차적 기대는 이 수치가 한 단계 내려가 5.4%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기대가 현실화됐다면 연준 기준금리는 올해 내내 추가인상 없이 5.25~5.50%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연준의 매파적 성향 강화는 점도표에 나타난 위원들의 내년 기준금리 전망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점도표상 내년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기존의 4.6%에서 5.1%로 두 단계나 상승했다. 이 전망이 실현된다면 내년 말 연준 기준금리는 5.00~5.25% 수준을 보이게 된다.
당초 시장이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올해 기준금리가 5.25~5.50%를 유지하거나 차기 FOMC 회의(10월 31일~11월 1일)에서 한 단계 상승한 뒤 내년 말엔 4.50~4.75%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즉, 기준금리가 올해 중 5.25~5.50% 또는 5.50~5.75%를 기록하다가 내년에는 3~4차례에 걸쳐 내려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점도표는 연내에 기준금리가 한 번 더 오른 뒤 내년엔 두 차례만 내려갈 것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회의당 기준금리 조정폭을 0.25%포인트로 전제할 경우 그렇다는 의미다.
연준의 메시지를 약술하자면 고금리 기조가 지금보다 더 강화된 뒤 그 기조를 유지하는 기간도 당초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진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연준의 행보가 기존보다 더 매파적으로 전개될 경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한층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올해 안에 두 나라 간 기준금리 격차가 2.25%포인트로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현재 국내 경제상황은 한은으로 하여금 섣불리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증가일로에 있는 가계부채도 문제지만 경제가 미국과 달리 둔화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환율 불안과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유상대 부총재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연준의 이번 통화정책 회의 결과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유 부총재는 연준이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고 설명하면서 “그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의 유가 오름세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면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은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빈틈없는 공조 하에 긴밀히 대응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