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라면 흔히들 도전해보는 공모전. 공모전은 응모자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선보이는 기회가 되고, 주최자에게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창작물을 다양하게 검토하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공모전 요강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은 없는가.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은 주최 측에 있으며 향후 홍보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10조에 따르면 공모전 출품작의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응모자에게 있음에도 이러한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부 공모전은 들인 노력에 비해 낮은 보상을 제시하여 논란을 빚기도 한다. 공모전의 명과 암이다.

이달 8일 CJ올리브영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서 ‘올영 공계 프사 헤더 그려줘요’라는 이벤트를 개최했다가 취소했다. 올리브영 공식 프로필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공모전으로, 이달 2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이벤트가 취소된 이유는 ‘열정페이’ 논란이었다. 올리브영이 내건 상품은 기프트카드 30만원(3명), 기프트카드 3만원(10명), 기프트카드 1만원권(20명)이었다. 해당 이벤트가 공개되자 네티즌들은 “무려 올리브영 공식 계정에서 사용할 디자인물을 30만원에?”, “현금도 아닌 올리브영 기프트카드라니, 대학생 공모전도 현금으로 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올리브영은 출품작에 대한 저작권 귀속 여부도 기재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발행한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에 따르면 공모전 수상작의 저작권자에게는 이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상액은 거래 관행 및 시장가격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또한 문체부는 공모전 개최 시 사전에 “응모된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응모자에게 있으며, 수상작에 한하여 O년 동안 복제·배포할 수 있다”고 공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올리브영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기자에게 “고객 반응을 다각도로 모니터링한 후 이벤트 중단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이 일은 어떻게 보면 마케팅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공모전을 통한 기업·공공기관들의 ‘열정페이’, ‘저작권 갑질’ 논란이 종종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소설 공모전 당선작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5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카카오엔터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공모전 당선작의 드라마·영화화 여부를 결정하고, 제작사를 독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신인 작가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모전에서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창작자의 권리를 제한한 것”이라며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포괄적인 양도를 엄격히 제한하는 저작권법령의 취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창작물 공모전 지침’ 등에 배치되고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도 벗어나는 불공정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저작권 침해는 공공기관이 여는 공모전에서도 일어난다. 올해 6월 대전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민아이디어 공모전을 열며 ‘저작권과 사용권 등 일체의 권리가 자치경찰에 귀속된다’고 썼다가 논란이 일자 수정했다. 3월에는 공주시가 근 3년간 연 공모전 15개 중 9개 공모전 수상작의 저작권을 가져갔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2016~2019년 공공부문(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개최한 창작물 공모전 중 창작자에게 저작권이 귀속된 사례는 42.5%에 불과했다.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신인 창작자다. 이들은 취업 활동의 일환으로 공모전에 응모하는 경우가 많기에, 주최 측이 불공정한 조건을 내세워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의 열정이 불공정하고 값싸게 부려 먹히고 있는 셈이다.

문체부의 꾸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응모자에게 불합리한 조건을 내세워 사익을 취하는 공모전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중의 인식 제고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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