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또 한 번 부동산 ‘영끌’ 매입에 대해 경고를 날렸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부동산 시장이 국지적으로나마 들썩이는 시점에서 나온 한은 총재의 경고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 총재는 19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가 금방 예전처럼 1%대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제하면서 “빚을 내서 집 사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빚을 내 집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 뒤 “금융부담이 금방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면 경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느슨히 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종합하면, 향후 집값이 마냥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인 만큼 무리하게 빚으로 집을 샀다가 투자 이익을 회수하지도 못한 채 이자 부담만 키우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 같은 발언은 국내 물가가 장기간 높은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그 여파로 고금리 기간이 덩달아 길어질 것이란 한은의 전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물가가 목표 수준인 2%로 수렴해가는 속도가 예상보다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는 유가가 당초 예상보다 많이 올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세력 간 충돌이 발생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발언에 내재된 부동산 시장 전망 또한 그가 누구보다 주택 가격 동향 자료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의 아파트 누적 매물은 7만6000건을 넘어섰다. 매물이 7만건을 넘어선 것은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20년 10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서울 아파트 매물이 쌓여간다는 것은 주택 가격이 한동안 서울에서조차 크게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는 곧 국내 주택 시장이 아직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 발언의 맥락으로 볼 때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하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여겨졌다.

그러나 상황은 이 총재가 기대했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하마스 간 분쟁이 돌출되는 바람에 불확실성이 커져 금통위 내부 분위기도 ‘예의 주시’ 모드로 돌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 총재가 부동산 ‘영끌’ 매입에 대해 경고를 날리면서 특히 염두에 둔 대상은 청년층이다. 저물가·저금리 시대를 주로 살아온 젊은층들이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해 오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총재의 경고를 뒷받침하듯 그의 발언 직후(미국시간 19일)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마의 5%벽을 넘어섰다는 외신 보도들이 전해졌다. 여기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이 추세화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승 압박도 강해지게 된다는 점이다. 미 장기 국채 금리는 이-하마스 충돌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의 재정 부담이 증가할수록 상승곡선을 그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7% 금리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금리 상승을 넘어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상황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경고도 함께 등장했다. 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겠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미국이든 우리든 당초 예상보다 길게 고금리 시대를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고금리 기간이 길어질 경우 가장 크게 고통을 느끼는 이들은 ‘영끌’을 통해 주택 매입에 나선 이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청년층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점이 청년층일수록 이 총재의 발언에 더 크게 귀를 열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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