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안전에 대한 우려를 낳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아파트 무량판 구조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아파트 건설 현장의 붕괴사고 원인이 무량판 구조가 아니라 부실 시공이었을 가능성이 조사를 통해 강화된데 따른 것이다. 그간 전문가들은 제대로만 시공된다면 무량판 구조엔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지난 23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전국의 민간 아파트 단지에서는 철근 누락이나 콘크리트 강도 부족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제외한 지방자치단체 주택도시공사가 발주한 공공분양·임대주택 단지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는 국토부가 지난 8월 3일부터 9월 말까지 민간아파트 단지 387곳과 지자체 주택도시공사 발주 아파트 단지 49곳을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반면 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서 철근(전단보강근) 누락이 확인된 사례는 두 건 더 늘어났다. 이로써 문제의 LH 발주 아파트 단지는 총 23곳에 이르렀다. 부실 사례 추가는 LH가 기존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뜨린 11개 단지를 대상으로 전문기관을 동원해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함으로써 이뤄졌다. LH가 23일 부실 사례로 추가해 발표한 곳은 의왕 초평 A3와 화성 비봉 A3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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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관의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검단신도시 사례 등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의 부실 원인이 오롯이 LH의 엉터리 관리·감독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전국의 모든 무량판 구조 아파트를 조사한 결과 LH가 지은 아파트에서만 부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정부와 LH 병행 조사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무량(無樑)판 구조란 바닥과 천장을 이루는 콘크리트판인 슬래브를 기둥이 직접 떠받치도록 하는 형태를 가리킨다. 슬래브 밑에 보(들보·樑)를 받친 뒤 그 아래에 기둥을 세우는 구조와 구별되는 구조다.

무량판 구조는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에 많이 적용된다. 보를 없앰으로써 층간 높이를 낮출 수 있어 공사비가 절감되고 공간 활용 면에서도 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주차장 공사 외 아파트의 거주 공간에도 무량판 구조가 주로 적용되는데 이 때엔 촘촘히 만들어지는 벽이 기둥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주거동의 경우 무량판 구조를 썼더라도 안전상 별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벽이 아닌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떠받칠 때 그 접촉 부분이 뚫리면서 천장, 즉 슬래브가 내려앉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유의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량판 구조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게 그간 전문가들이 강조해온 내용이다. 붕괴 사고의 원인은 부실 시공에 있다는 의미다.

무량판 구조는 비용과 공간 활용 측면에서 장점을 지닌 대신 시공이 복잡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우선 철근을 배치하는 일(配筋·배근)이 복잡해 시공이 설계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민간 건설업체들은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배근된 구조물을 미리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이 민간 건설사들이 시공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라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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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근 설계가 복잡한 만큼 설계와 시공이 연계된 가운데 공사가 진행된다는 점도 민간 건설업체들의 대체적 행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LH 발주 아파트에서는 설계 따로, 시공 따로 작업이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결과 설계가 제대로 됐다 할지라도 현장 작업자들이 복잡한 설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임의로 배근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량판 구조는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복잡한 배근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국토부 조사 결과는 무량판 구조가 안전한지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들이 제대로 시공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조사의 실제 목적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번 조사는 부실 시공이 LH 발주 아파트에서만 이뤄졌음을 보여줌으로써 과거에 일어난 무량판 아파트 붕괴 사고의 원인이 부실 공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해주었다.

문제는 LH가 지하주차장에 적용할 ‘LH형 시스템’을 개발했을 만큼 무량판 구조 적용에 적극적이었으면서도 관리·감독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만 염두에 두었을 뿐 안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안전 불감은 LH 출신 전관들이 대거 설계 및 감리 회사에 취직해 구조적 부실 여건을 조성한 것과도 연관돼 있었다. 시행사 및 시공사 입장에서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감리 과정을 전관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이 부실을 키운 원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정부와 LH의 병행 조사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무량판 구조 아파트 부실 공사의 원인이 전적으로 LH의 내부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것이다. 부실 공사의 구체적 원인은 엉터리 관리·감독이었고, 그 배경엔 전관을 매개로 한 LH와 설계·감리 회사 간 유착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결론이 뚜렷해진 만큼 해결책도 분명해졌다. 그 해답은 외력에 의한 LH의 강제적 환골탈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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