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 잠겨드는 듯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는 최근 공개된 각종 성장률 관련 자료들을 통해 보다 구체화·심화됐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한국의 유별나게 저조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로 나란히 1.4%를 제시하고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는 각각 2.4%, 2.2%를 제시했지만 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자리에서 내년 전망치 2.2%의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 경제 부진과 중동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져 전망치를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요즘 나오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들은 경제대국인 미국 등의 성장률 전망과 맞물림으로써 그 심각성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지난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배 이상의 경제규모를 지닌 미국이나 두 배 반 정도 규모의 일본보다도 올해 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분석됐다. OECD가 제시한 올해 국가별 성장률 전망치는 미국 2.2%, 일본 1.8%, 한국 1.5% 등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항의 컨테이너선들. [사진 = AP/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항의 컨테이너선들. [사진 = AP/연합뉴스]

통상 성장기에 있는 나라의 성장률은 커질 대로 커진 경제 대국들의 성장률보다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번 OECD의 발표 내용은 충격적이라 할만 하다. 이런 식이라면 미국·일본과 우리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내년에는 성장률 순위가 역전되는 것으로 발표됐지만 그 역시 호언장담할 일은 아닌 듯싶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최근의 저성장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 저성장의 기조화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잠재성장률에 대한 부정적 분석들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OECD 자료를 빌리자면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각각 1.9%와 1.7%였다. 그간 우리 스스로 2% 수준일 것으로 추정해왔던 잠재성장률이 1%대 후반까지 내려간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가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칭한다. 모든 생산 요소를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인 만큼 그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이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효율적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한다 해도 경제 규모를 확대할 여지가 작아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특히 끔직스러운 점은 내년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미국(1.9%)보다도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는 사실이다. OECD의 이 추정이 맞다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미국보다도 작게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일본이 잃어버린 세월을 거치며 중국에 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내준 뒤 그 격차마저 벌리며 주저앉은 일을 되새기게 하는 상황이라 하겠다.

10년 전만 해도 3% 중반 정도로 평가됐던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이처럼 급격히 낮아진 배경엔 빠르게 진행되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가 자리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성향의 노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실도 생산 요소의 효율적 활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규제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노력하기에 따라 아직 닫히지 않은 경제의 성장판을 더 크게 열어젖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안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저출산·고령화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여성과 이민 등의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그와 병행해 노동개혁을 조속히 완수하는 일일 것이다. 그게 곧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민생을 챙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정부와 정치권 모두의 각성이 우선돼야 실현될 수 있는 일들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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