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제도가 또 바뀐다.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28학년도부터 새로운 입시 제도를 적용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새 입시제의 골자는 문·이과 불문하고 선택과목 없이 똑같은 통합과목으로 수능을 치르게 한다는 것과 내신 9등급제를 절대평가·상대평가 병행 방식의 5등급제로 바꾼다는 것 등이다.

큰 폭의 변화에 지금의 중2는 물론 현행 입시제에서 마지막으로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중3, 그리고 그 학부모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내용을 두고도 여지없이 비판과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판의 주 내용은 △정시 비율 40%도 바꾸어야 한다 △내신 등급 단계를 축소하면 결국 수능 비중만 커진다 △내신 변별력 약화와 수능 비중 증대는 특목고나 8학군 고교들에 대한 선호를 키운다(그 결과 고교 서열화가 구체화된다) △내신 1등급이 양산되면 대학들은 수시전형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에 더 큰 비중을 두려 할 것이다 △과탐·사탐을 모두 치르면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이 더 커진다 등등이다. 꽤나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하나하나에 나름 일리도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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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교과 선택의 다양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시행될 고교 학점제가 통합과목 수능으로 무색해진다는 점 △고1 과정 이하 수준의 통합수학·통합과학만으로 수능을 치르면 기초학문 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된다는 점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교육부가 심화수학 존속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터져나왔다. 심화수학 존속이 문·이과 통합 취지와 배치된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제도 변경 시도 자체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 입시제도의 내용보다 이 점에 불만을 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권마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다시피 하니 혼란스럽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각 정권이 ‘백년지대계’를 주장했지만 실제론 ‘오년지소계’를 마구 내놓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제도 개편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입시제도가 바뀔 때마다 지금처럼 내용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너무 변화무쌍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것도 한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수험생들의 입시 부담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용 자체가 난수표처럼 복잡미묘하다 보니 새로운 제도에 대한 분석과 그에 적응하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은 오롯이 전문 학원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학부모들은 학원이 제공하는 분석 내용을 비용을 지불해가며 구입해 자녀들 대신 입시 전략을 짜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내신 관리하랴 수능 대비하랴 정신없는 자녀에게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주려다 보니 나타난 기현상들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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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뿐인가. 입시철이 되면 학부모들은 대학들이나 입시 전문학원들이 진행하는 설명회를 찾아다니느라 분주해진다. 이 무렵엔 별도의 유료상담도 횡행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의 열의와 능력에 따라 학생들의 대입 성패가 갈리는 불공정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잘못 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런 불합리는 쉬운 문제로 시험을 치르면서도 변별력을 갖춰 대학들이 객관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해줘야 하는 모순된 입시제를 지향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지향점을 줄기차게 추구하는 핵심 이유는 과도한 사교육비에 대한 반감이다. 공교육 붕괴에 대한 우려도 모순된 입시제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대입시 제도도 사교육비 축소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이 그런 현실을 방증해준다. 제도가 바뀔 때마다 입시 관리 당국이 ‘쉽게 더 쉽게’를 강조하다 보니 결국 수월성 교육만 약화되는 엉뚱한 결과가 빚어졌다.

우수 학생 선발을 위해서는 서열화가 필수인데, 그게 터부시되다 보니 오늘날 우리 대학들은 쉬운 문제들을 실수 없이 잘 풀어내는 범재형 고득점자를 가려 뽑는데 집중하게 됐다.

우리 대학 입시제도의 개편은 이런 불합리와 모순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서열화의 수용이다. 파리1대학, 파리2대학 하는 식으로 프랑스처럼 대학을 평준화할 요량이 아니라면 학생 선발 과정에서의 서열화는 필요하고도 당연한 작업이다.

이 점만 인정한다면 대학 입시제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단순명료해질 수 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대입 응시 자격시험과 대학별 본고사 병행이다. 언제부터인가 본고사는 금기어가 돼버렸지만 이젠 우리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본고사란 말만 나오면 비난이 쏟아질까 두려워 손사래부터 치고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대학들은 논술시험에 한동안 영어 제시문을 끼워넣었는가 하면, 언어와 탐구영역, 수리 등의 지식을 두루 갖추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논제를 내는 방식으로 사실상 본고사를 시행해왔다. 수시전형의 문·이과 논술이 공히 그랬다. 모든 영역이 망라된 이른 바 통합논술은 고교 교사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 대입전형이 돼버렸다.

대학별 본고사가 사교육을 더 부추길 것이란 주장이 많지만 실제로 그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늘 과열 상태를 유지해온 사교육 시장이 본고사가 부활된다 해서 더 달아오를 여지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본고사 시절엔 소수 과목에 집중할 목적으로 종로 일원의 단과반 학원 두어 군데를 수개월 단위로 다니는 게 사교육의 전부였다. 따라서 사교육비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엔 입시 제도가 단순해 고 1, 2학년 때 잠시 일탈했던 학생도 고3이 된 뒤 정신 바짝 차리고 책을 파고들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수험생들은 각자 원하는 대학의 전형에 맞춰 공부하면 그만이었다. 입시제도 전반을 분석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덕분에 빈농 집안의 시골 학생이 알전구 아래에서 사과궤짝을 놓고 공부해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성공 스토리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공교육은 대입 자격고사 성격의 예비고사가 있었던 덕분에 기본틀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예비고사 점수는 대학별 입시전형에도 일부 반영됐었다.

1970년대처럼 꼭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형식마저 대학들이 각자 정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게 대학 자율화의 요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진정한 대학 자율화는 대학별 자율입시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기억하기론 오래 전 종종 있었던 여론조사에서도 본고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응답자 과반의 지지를 받았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과거 본고사 시절 대학들이 일본 명문대의 입시 문제를 그대로 베껴서 출제하는 등의 문제를 드러냈지만, 오늘날 우리 대학들은 그때의 그 대학들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거의 본고사가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정도로 몹쓸 제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커지기 시작한 서열화 반대 목소리가 본고사를 금기어로 만든 것 같다. 그런 목소리를 냈던 빅마우스들 중 일부는 한때 국립대 네트워크화를 외치며 서울대를 그렇고 그런 대학 중 하나로 만들려 애쓰기도 했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다수의 의견이다. 제대로 된 대입시 제도를 만들기 전에 그들이 대등한 가치로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해 진정한 여론이 무엇인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본고사 부활도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어야 한다. 가방 끈 짧은 학부모는 이해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대학 입시제도를 끝까지 고집한다면 그 자체가 불공정한 일이 아닐까 싶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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