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시작됐다. 그 서막은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총지출 656조9000억원)이 건전재정의 기조 하에 편성됐다고 설명하면서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가 “미래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과 국가신인도 유지를 위해서도 건전재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협조 요청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현 정국 상황으로 보아 올해 예산국회는 오히려 전례 없이 소란스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은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진행된 사전환담 자리에서 일찌감치 예고됐다.

비공개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생과 경제가 어려운 현실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정책 및 예산 운용에 있어서 대대적 전환을 해주면 좋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는 이 대표 스스로 환담 후 기자들에게 밝힌 사실이다. 지금의 경제난과 민생고를 재정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해결해나가자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사진 = 연합뉴스]

여·야 간 대립은 정부·여당이 건전재정 기조를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건전재정 기조는 이미 제출된 예산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올해 본예산 기준 총지출 증가율이 2005년 이후 최소치인 2.8%에 그쳤다는 점이 단적인 증거다.

과연 건전재정이 맞느냐는 시비가 일부 있었지만, 정부가 국회에 낸 예산안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감액 예산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이전의 문재인 정부 못지않게 확장재정을 선호해온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 그 배경을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

예산 편성 기조에 대한 이견 못지않게 예산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도 여·야 간 인식 차이가 큰 것으로 비쳐진다. 민주당은 지역화폐 및 소상공인 대출지원 등과 관련된 ‘민생 예산’은 물론 정부가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도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항목에 인색하게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민생을 내팽개치고 국가 미래를 펑크내려 한다’(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지적이 있은 뒤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된데 대해서 특히 강한 비판을 가해왔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R&D 예산을 올해분(31조원)보다 16.6% 삭감한 25조9000억원으로 책정했다. 그간 통계분식용이란 비판을 받아온 일자리 예산 또한 기존(30조3000억원)보다 3.5% 줄인 29조3000억원으로 결정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파행을 계기로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기존의 6626억원에서 1479억원으로 축소됐다. 이 부분 또한 정치논리와 맞물려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SOC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4.6% 늘어난 26조1000억원으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 가운데 민생 부분을 강화하고 대신 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사용처가 불분명한 특수활동비, 홍보비 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타 정치·사회적 현안들인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논란 등도 예산안 심사 과정을 험난하게 만들 변수로 거론된다. 이들 사안은 정치적 타협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예산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정치적 타협과 줄다리기 양상에 따라 정부의 예산 운용 기조가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은 건전재정에 대한 정부의 굳건한 의지다. 예산안 의결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만큼 항목별 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건전재정이란 기조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여당은 이번 예산국회가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의지를 가늠해볼 확실한 시험대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채무가 1100조를 넘어갔고 GDP 대비 비율 50%를 넘보는 현실 속에서 건전재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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