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가관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자주 거론하는 단어 중 하나가 슈링크플레이션이다. 정부 당국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물가를 억누르자 풍선효과처럼 곳곳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일이다. 물가관리 당국은 고물가 현상이 장기화되자 ‘배추 국장’ ‘무 과장’ 등의 옛말을 상기시킬 정도로 물가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 꼼수로 물가를 올리는 듯한 행태가 빈발하자 그 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 같다.

슈링크플레이션은 ‘shrink(줄어들다)’와 'inflation(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을 그대로 묶어둔 채 양을 줄여 사실상 물건 값을 올리는 행위를 지칭한다. 통상 ‘플레이션’이란 접미사를 수반하는 합성어는 특정 품목의 가격 상승이 물가 수준 전반을 높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슈링크플레이션의 여파는 단순히 해당 품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이 슈링크플레이션을 엄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추경호 경제부총리(가운데). [사진 = 연합뉴스]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추경호 경제부총리(가운데). [사진 = 연합뉴스]

최근 빈번해진 슈링크플레이션 행태에 대한 정부 쪽 경고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공개발언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추 부총리는 지난 1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가격을 그대로 두고 양을 줄여 판매할 경우 그게 자율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되는 발언이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경제 관련 부처 당국자들의 연쇄 반응으로 이어졌다. 추 부총리의 경고성 발언 이틀 뒤엔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그 다음 날엔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이 슈링크플레이션 행태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적절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물가관리 당국의 실무 책임자 격인 김 차관은 17일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물가관리 차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정직한 판매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슈링크플레이션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억제하거나 제재를 가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양을 줄여 이전 값을 받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닌 한 시장가격 결정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정부가 관여할 대상도 아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처럼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정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자칫 가격통제 시비만 부르고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도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정부 관계자들도 아직은 소비자들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언론과 소비자단체가 앞장서서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시장 스스로 정화작업에 나서주길 바라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자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비쳐지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슈링크플레이션 자체를 죄악시하는 일, 정부가 상품 제조사에 가격책정과 관련해 직접 ‘협조 요청’을 하는 일 등은 자제돼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총선이 목전에 다가와 있는 상황에선 정부가 가격통제를 하고 싶은 유혹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만연하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을 손 놓고 구경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어디까지나 가격 결정에 관한 사안이므로 시장에 맡겨두고, 정부는 정부가 할 일만 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냉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대안은 정부 당국자도 언급했듯이 소비자의 알권리를 철저히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제를 촘촘히 가다듬고 엄히 시행하는 일이다. 양을 줄여 가격을 올리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려 하지 말고, 그 안에 내표된 꼼수 요인을 철저히 가려내 엄벌토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10개들이 상품이 기존 가격으로 9개들이로 바뀌었다면 소비자들이 그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그게 안 통하면 엄벌에 처해지도록 조치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만연하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정부의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시장주의 원칙에도 맞는 자세일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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