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올리자니 경기 위축이 우려되고, 내리자니 고물가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신경 쓰이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의 덫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선택지는 오직 하나 동결뿐이다. 통화정책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연이은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경제 상황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어서이다.

한은이 30일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에서 또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지난 1월 0.25%포인트 인상 이후 10개월째, 금통위 회의 횟수로는 7번째 3.50%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21년 8월 0.25%포인트 인상(0.50%→0.75%) 이후 올해 1월까지 숨가쁘게 상승일로를 달리던 기준금리가 올해 2월부터 장기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한은의 딜레마는 복잡미묘한 국내경제 상황에서 비롯됐다. 좀체 꺾이지 않는 고물가와 가계부채 총량의 연이은 신고점 행진으로 보면 한은 기준금리는 인상돼야 마땅하다. 오래 전 역전 상태에 돌입한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를 고려하더라도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가 뚜렷한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한은도 부정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한은이 공개한 수정 경제전망이 그런 정황을 보여주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로는 이전과 동일한 1.4%를 제시했다.

반면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보다 비관적으로 수정됐다. 기존 전망치 2.2%가 2.1%로 하향조정된 것이다.

같은 날 발표된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동향 자료도 한은의 수정전망과 맥을 같이했다.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생산(-1.6%)과 소비(-0.8%), 투자(-3.3%) 관련 지표들은 전달보다 일제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른 바 트리플 감소가 재연됐을 만큼 당월 산업활동이 부진했음을 말해주는 수치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기저효과와 맞물린 일시조정 효과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지만 전월 대비 전산업생산 감소폭이 1.6%나 됐다는 점이 경기가 녹록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생산 감소 1.6%는 2020년 4월(-1.8%) 이후 나타난 최대 하락폭이다.

소비와 투자 부진도 눈에 띌 정도였다. 소비 감소는 음식료품을 비롯한 비내구재 판매가 3.1% 감소한데 주로 기인했다. 설비투자 또한 기계류와 운송장비 투자가 동반 하락한 탓에 비교적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경기에 대한 전망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반도체 경기가 아직 본격적인 회복 단계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는 점도 그 같은 분석의 배경중 하나다. 이에 따라 한은은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경기 둔화 환경에서 억지춘향식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중 다행인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긴축기조 유지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금리동결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준 관계자들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시사에도 불구하고 현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내년 5월이면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이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그 같은 분위기는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현재 2.00%포인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한은에 금리인상 압박을 덜어주는 요인이 되어주고 있다. 최근 들어 환율이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고, 국제유가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점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택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렸다가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걸림돌이다. 섣불리 격차 확대를 감행했다가는 언제든 국내에서 달러화 유출과 그에 따른 증시 부진, 원/달러 환율 불안 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

늘어나는 가계대출도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쓰는데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가계대출 규모는 10월 한 달 동안 은행권에서만 6조8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문제는 한은 기준금리 인상과 인하 모두를 제약하는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로 소비가 위축되고, 내리면 가계대출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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