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 단체가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겉보기엔 대립 구도가 일대일인 듯 비쳐지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무모한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단체를 정부와 대학이 합세해 압박하고 있는 게 지금의 실상이다. 언론도 정부의 원군으로 가세하고 있다. 여론 또한 의사들에게 비우호적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정도로 대변되는 의사집단으로서는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세 불리 탓에 의사집단의 목소리는 크게 부각되지 못 하고 있다. 더구나 언로마저 정부와 언론에 장악당한 마당이니 의사단체의 의대 정원 관련 주장과 논리는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점도 문제지만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의사집단의 합리적 주장조차 귀족 집단의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 바탕엔 ‘의사들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란 사회적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의사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협 등의 주장에 집단이기주의가 개입돼 있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의사집단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의료계와의 충분한 소통 없이 정부가 여론에 기대 임의로 의료인력 증원 방안을 마련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은근히 시도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여론몰이 정황들이다.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한 한 다다익선이란 입장을 갖고 있는 대학들을 상대로 수요 조사를 벌인 것부터가 저의를 의심케 하는 일이었다. 정부가 그런 대학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뒤 2000여명이 더 필요하네, 3000여명이 더 필요하네 발표를 하니 “고양이에게 생선이 몇 마리 더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언론 매체들도 의협 등의 반발을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만 치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사집단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 그 방증이다. 때론 정부 못지않게 여론몰이를 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다.

비근한 예가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계 보건의료 실태 관련 보고서 내용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 행태였다. 해당 보고서는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Health at a Glance 2023)’이었다. 보고서가 발표되자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 의사들의 보수와 관련된 부분만을 떼어내 기사화했다. 요지는 한국 의사들의 연평균 소득(2021년 기준)이 자국내 전체 노동자 평균치의 2.1~6.8배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월급쟁이 일반의가 2.1배, 개원한 일반의는 3.0배, 월급쟁이 전문의는 4.4배, 개원 전문의는 6.8배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보고서엔 한국 의사들이 유독 많은 소득을 올린다는 내용은 담겨져 있지 않았다. 국가별로 의사들의 소득이 풀타임 노동자 평균임금의 몇 배인지를 기술했을 뿐 소득액이 얼마인지를 밝히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보고서 내용만으로는 OECD 회원국 의사들은 물론 한국 의사들이 자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소득 분위에 포함돼 있는지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다. 의사 소득을 말할 때 대학병원 진료의 주축이면서도 과로에 시달리며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는 인턴의사와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소득을 누락시키는 예가 많은데, OECD 보고서가 이들의 소득을 집계에 반영했는지도 의문스럽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대기업 과장만 돼도 국내 근로자 평균임금의 서너 배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참고로 말하면 2021년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333만원(통계청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이었다. 통계청은 같은 해 우리나라 금융·보험업 월평균 임금이 726만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정 업종의 평균임금만 해도 국내 근로자 평균의 2배 이상임을 말해주는 자료다.

의사들이 고소득자라는 점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균 임금의 2배 이상을 번다는 말이 갖는 의미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현실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의사들, 그중에서도 대학병원 교수들은 6년 과정의 의대 졸업 후 인턴의사 1년, 전공의 과정 3~4년, 전임의 과정 2~3년 또는 그 이상을 경험한 뒤부터서야 제대로 된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경우 군의관 근무 36개월을 거치면 40세가 다 돼서야 비로소 평균치 대비 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중간 과정인 박사학위 이수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다. 이런 실상은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OECD 보고서가 의사들의 보수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 이 보고서의 강조점은 OECD 회원국 의료 시스템 발전을 가로막는 재정압박 현황이었다. 작성 취지는 각국 의료 시스템이 디지털화 진전 등을 통해 보다 건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들은 보고서 230여쪽 중 불과 한 페이지를 차지한 의사 보수 부분만을 발췌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의사들이 소수 고소득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애쓰고 있다. 논리적으로 의대 증원 이슈에 접근하려 하기보다 ‘의사들은 소수 기득권층’이라는 감성적 메시지를 은연중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의 여러 목소리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의료시설 과잉에 대한 우려다. 지방의대의 입학생 수를 무작정 배로 늘려주면 의료시설 과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의사집단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현재 40명 정원인 지방의대가 그 수를 80명으로 늘리게 되면 지역인구 수와 무관하게 병상수를 1000개 정도로 늘려야 한다. 매년 80명의 의대 졸업생을 수용해 수련병원으로서 기능하려면 그 정도 병상 규모를 갖춘 대학병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0개 내외의 병상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한 지방 대학병원들조차 예외 없이 완비하기는 쉽지 않은 규모다. 수도권 이외의 대학병원들 중엔 그 이하의 병상을 보유한 병원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만약 지방대 대학병원들의 병상수가 일제히 1000개 내외로 늘어난다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지역 의료 수요가 그 정도 규모의 대학병원 시설을 활용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그런 예상을 낳게 하는 이유다.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제공항 난립과 유사한 사태가 의료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의 국제공항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것 못지않은 진풍경이 덩치만 커진 비수도권 대학병원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설 확충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할 점은 의대생 교육인력 및 시설·자재의 충분한 확보다. 모두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런 우려를 묵살한 채 의대 정원 증원을 강행했다가는 질 낮은 ‘낙수 의사’가 양산되고, 그 결과 대한민국 의료서비스의 전반적 수준이 크게 저하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

의료인력 증원 이슈는 국가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초고령·저출산 사회가 현실화되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의료 인력은 분명 늘어나야 하고 그에 맞물려 시스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시스템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현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 그리고 예측이다. 거기에 꼭 필요한 인력이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이다.

정책 당국은 일반의 의료서비스 확대 요구에 호응하되 다른 한편으로 의사집단의 증원 계획 반대 이유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야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개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 모든 국가정책 사안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인간의 생명과 직접 관련되는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결코 여론몰이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정부나 언론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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