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물가관리 부처를 중심으로 ‘배추국장’, ‘무과장’이란 비아냥 투의 말이 유행했던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요즘 정부의 물가관리 노력은 처절한 것으로 비쳐진다. 중앙정부 관계자들은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품목 하나하나를 챙기며 기업에 가격 인하를 호소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가관리에 초비상이 걸린 곳 중 하나가 농림축산식품부다. 공급망 사태와 기후변화 등으로 먹거리인 농축산물 가격이 널뛰기를 예사로이 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달 30일엔 농식품부 실장급 간부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식품 제조사인 오리온 본사를 찾아가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과자 원료로 쓰이는 조제땅콩 수입가격이 크게 올라 과자제품들의 제조원가가 덩달아 상승함으로써 제품 값 인상이 예상되자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중앙부처 최고위직 관리가 이 정도로 특정 품목의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일이 요즘 들어서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물가가 오를 기미만 보이면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이 제조사를 찾아가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일이 예삿일이 된 것이다.

마트를 둘러보고 있는 한훈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사진 = 연합뉴스]
마트를 둘러보고 있는 한훈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사진 = 연합뉴스]

이에 따라 또 다른 식품제조사 오뚜기는 이달부터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리려 했다가 그 계획을 철회했다. 철회 대상 세부 품목수가 24종에 이른다. 풀무원도 이달 초부터 요거톡 제품 3종의 가격을 인상하려 계획했다가 없던 일로 되돌렸다. 이 모두 정부가 관리들을 동원해 일대일 대응을 하다시피 하며 품목별로 가격을 관리함으로써 생겨난 일들이다.

식품업체들의 이런 일련의 반응에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소비자들은 반색을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이게 바람직한 방법인지, 진정한 효과가 있는 것인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가 벌이고 있는 물가관리 행태는 말이 협조요청이지 사실상 가격통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고위직 공무원이 현장까지 찾아가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하는 것 자체가 제조사들에겐 압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물가관리 방식은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잠시 동안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물가는 억지로 누르면 오히려 응력을 키우다가 한 번에 크게 점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 차이를 두고 물가가 오르는 것 외에 왼쪽을 누르면 오른쪽이 부풀어 오르는 식의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가 제9차 경제개발계획을 이행할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현지 무역관이 보내온 철근 가격 통제정책 관련 보고서는 인위적 가격통제가 가져다줄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보고서 내용은 정부가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자 자국 시장에서 철근이 일제히 사라지고 대신 암시장에서 통제가격보다 높은 국제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효과에 대한 것 외에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혹여 현재의 물가관리 방식이 정치적 일정과 맞물려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시한으로 정한 뒤 물가의 단기적 관리에 올인하려는 것이라면 사후에 불거질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만약 물가관리가 정치일정을 의식해 진행되는 게 맞다면 국내 물가는 총선 이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튀어오를 수 있다. 여기에 경기 부진까지 더해진다면 국내경제는 곧바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수도 있다.

정부의 물가관리는 최대한 직접적 인하 압력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가격담합을 억제하고, 공급망을 치밀하게 유지·관리하는 한편 품목별 수급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며 필요할 때 빠르게 할당관세를 조절하는 등의 대응을 해나가는 게 올바른 길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물가관리 방식에 무리가 없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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