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못난이’는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뜻한다. 그 ‘못난이’란 이름이 붙은 채소·과일이 있다. 찌그러진 사과, 휘어있는 가지, 여러 갈래로 갈라진 당근 등등. 맛에 문제가 없더라도 모양과 크기에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들이다.

2019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는 음식 쓰레기양은 한해 13억t이다. 국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0년 서울신문이 농림축산식품부에 의뢰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채소·과일 ‘등급 외’ 발생 비중은 11.8%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최대 5조원으로, 한해 농산물 생산액의 3분의 1에 이르는 액수다.

등급 외는 밭에 그냥 버려지거나 가공업체에 값싸게 넘겨져 즙·주스가 된다. 날씨가 나쁘면 더 많은 농산물이 버려진다. 올해 6월에는 전국에 쏟아진 지름 0.2~2㎝의 우박에 과일들이 상해 과수원들이 울상을 짓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에 최근 홈쇼핑, 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업체들이 못난이 농산물 유통에 나섰다. 못난이 농산물은 버려질 농산물을 구매한다는 ‘가치 소비’는 물론이고, 고물가 시대 가성비 먹거리로도 주목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3.6% 오르면서 2년 6개월 만의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NS홈쇼핑은 못난이 농수산물 판매가 잘 자리 잡은 대표적인 유통채널이다. NS홈쇼핑이 올해 판매한 전체 상품 중 ‘못난이 백명란’, ‘열매나무 못난이사과’, ‘아름아리 못난이사과’가 판매량 7, 11, 1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억8000만원 수준이던 못난이 사과 판매액은 올해 53억5900만원으로 4배 이상으로 늘었고, 올해 출시한 못난이 백명란은 34억3700만원어치 팔렸다.

NS홈쇼핑에 따르면 비슷한 규격 및 동일 중량으로 비교했을 때 과일류는 약 30%, 명란은 약 16%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NS홈쇼핑 관계자는 기자에게 “고객의 선택지를 넓히고 농·어가 소득 증대를 돕기 위해 못난이 농수산물을 판매하게 됐다”며 “못난이 농산물은 즙·주스 용도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되기 때문에 농가에서도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롯데마트는 2016년부터 ‘상생 과일’, ‘상생 채소’라는 이름으로 30여종의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해왔다. 상생 과일·상생 채소는 일반 상품보다 최대 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으며, 올해 1~9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증가하는 등 호응도 높다.

홈플러스도 ‘맛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김장철인 지난해 10월 맛난이 무는 일반 무보다 44% 많이 팔렸다. 이마트는 흠집이 있지만 당도는 높은 ‘보조개 사과’를 판매했다. 해당 상품의 가격은 1㎏에 5000원으로, 같은 무게 일반 사과(1만760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보조개 사과의 올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6배에 달한다.

쿠팡은 못난이 채소에 ‘못생겨도 맛있는’이라는 이름을 붙여 30%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있다. 올해 7~9월에는 악천후로 피해를 입은 전국 농가에서 무·당근·오이·파프리카 등 18종의 못난이 채소 370t을 매입했다. 컬리도 올해 6월 못난이 채소 브랜드 ‘제각각’을 론칭했다. 컬리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저렴한 상품을 선보이고자 기획했으며, 농가에서도 새로운 판로를 얻어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스타트업들도 등장했다. ‘어글리어스’는 2020년부터 유기농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입자 수는 올해 기준 16만명, 정기 구독자는 5만1000명이다. 올해 1월에는 못난이 농산물 직거래 플랫폼 ‘못난이 마켓’이 생겼다. 못난이 마켓 입점 농가는 300여곳이며, 월간 사용자는 4만명에 이른다.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높다. 2021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못난이 농산물 구입 실태’에 따르면 응답자 61%가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95.5%가 재구매 의사를 밝혔다. 구매 이유로는 ‘저렴한 가격’이 가장 높은 비율(46.4%)을 차지했다. 고물가 시대 못난이 농산물의 인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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