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를 위해 설정된 대주주 기준선이 기존의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크게 올라간다. 적용 대상은 내년 1월 1일 이후 양도분부터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연말 기준으로 50억원 이상의 대주주가 아닌 한 주식 매도 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21일 이상의 내용이 포함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오는 26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현행법 상으로는 주식을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하면 대주주로 분류된다. 특정 종목 지분율이 일정 수준(코스피 1%, 코스닥 2%, 코넥스 4%) 이상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양도차익에 대해 매겨지는 세율은 20~25%이다. 25%의 세율은 과세표준이 3억원을 초과할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내년부터 부과 기준선이 크게 높아지면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양도세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종목별 50억 미만을 보유한 채 여러 종목에 걸쳐 수백억 또는 수천억을 투자하는 ‘큰 손’들이 보다 큰 혜택을 입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 점 때문에 야당에서는 진작부터 ‘부자 감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도 변경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야당 측의 반대 이유는 또 있다. 야당은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가 제도 개선이란 미명 하에 추진돼왔지만 사실은 총선용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야권 일각에선 “선거용 날림 정책”이란 격한 반응까지 나왔었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이 결과적으로 여·야 간 합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은 비판의 여지를 안고 있다. 지난해 말 여·야는 ‘대주주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조치를 2025년까지 유예한다는 데 합의했었다. 여·야 각각이 추진하는 주요 안건 하나씩을 양보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이번 조치에는 대통령실과 새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분석은 곧 물러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도 변경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던 것과도 연결돼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었다. 재정 운용 책임자로서 과세 형평성 시비나 세수 감소 등의 문제를 의식해 한 발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임 경제부총리 감인 최상목 후보자는 추 부총리의 말과 상당히 결이 다른 입장을 표명해 눈길을 끌었다. 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답변하면서 “대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제도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이해될 만한 답변이었다.

그는 야당의 과세형평성 시비를 염두에 둔 듯 “과세형평도 중요한데 이 부분(주식 양도세 부과 문제)은 자산·국가 간 자본 이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과세형평성 이상으로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가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을 입안한 당사자이자 대통령실 경제수석 출신이라는 점도 이번 조치가 대통령실의 의중에 따른 것이란 분석을 가능케 해준다.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다.

정부가 이번 조치를 추진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매년 연말이면 다수의 주식 투자자들이 양도세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거 주식 매도에 나서는 일이 반복돼 온 점이 그 이유였다. 이에 따라 연말이면 주식 시장에 변동성이 가중된다는 내용의 불만이 주식 투자자들로부터 제기돼왔다.

이런 현상은 올해에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다수 시장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올해의 경우 미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덕분에 큰 호재가 등장했지만 개인들의 매도 행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의하면 이달 20일까지의 7거래일 동안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6800억원을 순매도했다. 직전 7거래일(12월 1~11일)의 4900억원에 비하면 10배 가까이로 불어난 액수다.

물론 여기엔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용도 포함돼 있겠지만 연말이 다가오면서 나타나는 개인의 순매도 급증이 예사로운 수준을 넘어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대주주 기준을 피하려면 12월 마지막 거래일을 2거래일 앞둔 시점까지 종목당 보유주식이 10억 미만에 머물러야 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올해의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설정된 마지노 선은 오는 26일이다.

논란 많은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선은 그간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이 제도 설계 당시이던 2000년엔 기준선이 100억원이었으나 2013년에 50억원으로 내려갔고, 문재인 정부 시절 추가로 인하돼 지금까지 10억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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