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마침내 국회의 최종 문턱을 넘어섰다.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의 규모는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것보다 3000억원 감액된 656조6000억원(총지출 기준)이다. 본예산 기준으로 계산한 전년 대비 증가율은 2.8%다.

예산 증가율이 이 정도에 그쳤다는 것은 사실상 마이너스 예산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3%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 같은 짠물 예산은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서 비롯됐다. 이전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면서 나라 곳간을 부실하게 만듦으로써 짠물 예산이 불가피해진 측면도 있었다. 실제로 현 정부까지 방만한 재정 운용을 지속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국제사회로부터 국가 신인도를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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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올해 예산국회는 짠물 예산을, 그것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일단 평가받을 여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일 뿐 내용이나 과정이 충실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의 짠물 예산안은 여·야가 정기국회 내내 정쟁만 일삼다가 막판에 밀린 숙제하듯 해치우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온존될 수 있었다. 여·야가 제사 대신 젯밥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으르렁거리다 치밀한 심의도 하지 못한 채 부수법안과 함께 예산안을 일괄 처리한 행태가 그나마 짠물 예산안을 살아남게 해주었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는 이번 예산국회 기간 동안 여·야가 예산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인다는 소식을 거의 접할 수 없었다. 기껏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기국회 마감일 이후 11일, 헌법상 예산안 처리 시한 이후 18일 만인 지난 20일에야 여·야가 예산안 처리에 부랴부랴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합의를 위해 모인 이들은 여·야 원내대표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양측 간사들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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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세부 심의가 있었다지만 그것마저 주로 족보에도 없는 소소위를 통한 밀실심의를 통해서였다. 소소위 심의 행태는 오래 전부터 구태로 지목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공히 이를 즐기는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쪽지를 주고받으며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통과된 예산안의 대강은 정부안에서 4조2000억원을 깎고, 여·야 요구로 3조9000억원을 늘려 결과적으로 원안보다 3000억원을 순감한다는 것이었다. 세부적 합의 내용은 논란을 빚었던 연구개발(R&D) 예산 6000억원 증액, 원자력 관련 예산 1814억원 존속,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 3000억원 신규 책정, 새만금 예산 3000억원 증액 등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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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도 여당은 짠물 예산 확정이란 목적을, 거대 야당은 당 대표와 지지 기반 지역의 개발 예산 확보라는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주고받기 행태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유감스러운 점은 예산 당국이 그토록 강조해온 약자 보호와 미래 준비, 국민 안전 등과 관련한 예산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예산국회는 결과적으로 짠물 예산안 확정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지만, 그 과정이 투명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헌법상 마감 시한을 19일이나 넘겼다는 점, 소소위의 밀실심의 관행이 재연됐다는 점 등도 아쉬움을 더해주는 요인들이다. 결국 올해 예산국회도 구태를 반복하며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남긴 채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됐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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