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근 연장근로시간 한도 위반 여부를 다투는 재판에서 주 단위 계산이 맞다며 사용자 측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자 노동계가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는 이번 결정이 법정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다.

경영계는 대법원 결정을 반겼다. 정부도 대법원 판결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드러냈다. 지난 7일 있었던 대법원 판결 내용을 뒤늦게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소개하면서 그 의미를 부각시킨 것도 정부 당국이었다. 지난 26일 고용노동부는 서면 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은 행정해석으로만 규율됐던 연장근로시간 한도 계산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고민한 것으로 이해하며, 이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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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대법원 판결은 2013~2016년 이모씨가 근로자에게 퇴직금과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130회에 걸쳐 연장근로를 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1, 2심은 이 사건 재판에서 이씨에게 일부 유죄가 인정된다며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이 유죄로 인정한 109회의 연장근로 중 세 건에 대해서는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그런 결정과 함께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심 판결의 효력을 없애면서 사건을 되돌려 보내 다시 심리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표면상으론 2심과 대법원 판결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대법원 결정엔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주당 40시간에 더해지는 연장근로가 한도(12시간) 이내인지를 계산할 때 판단 기준을 주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예를 들어 A씨가 일주일 동안 하루 15시간씩 3일을 근무했다고 치자. 이 경우 A씨는 주당 45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인정된다. 연장근로를 합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 이내이므로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지만 그동안 고용부는 이런 경우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판단해왔다. 주 3일을 근무하는 동안 하루 7시간씩(8+7=15시간) 총 21시간의 연장근로를 해 결과적으로 주당 한도인 12시간을 초과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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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위의 A씨 케이스를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다루자면 근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근무시간을 계산하면 45시간이 나와 연장근로 시간은 총 5시간(40+5시간)에 그치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주당 연장근로 허용범위 12시간 이내이니 법 위반이 아니라는 의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 관련,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간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 1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며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는 1주간의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 당국은 근로시간에 대한 행정해석을 기존과 달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판결이 근로시간 유연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내려졌으니 그에 부응하겠는 것이다. 이번 판결 이전에도 윤석열 정부는 경직적인 근로시간 관련 제도에 유연성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노동계의 반발이 일고 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경직적으로 운용되어온 근로시간 규제 제도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공장노동이 주를 이루던 시기라면 모를까 현행 주 52시간제는 직업이 세분화되고 근로형태 및 시간이 다양해진 오늘날 노동환경에 맞지 않는 경직된 틀 속에서 운용돼온 게 사실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주 52시간제 운용에 유연성만 조금 더 보장해줘도 우리의 노동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기존 틀을 바꾸려는데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여유를 두고 연장근로 한도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정부가 섣부르게 연장근로 총량관리 방안을 검토했다가 ‘주69시간 근무제’란 비아냥 속에 뜻을 접었던 일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 구조개혁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는 그 취지를 살려 주52시간제에 유연성을 부여해 나가려는 노력을 적극 펼쳐야 한다. 다만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노사합의나 근로자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 등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맛좋은 음식도 급히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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