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또 동결됐다. 횟수로는 8회째, 기간으로는 꼭 1년째다.

한은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3.25%에서 3.50%로 올라간 이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간 국내외 경제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통화정책 운용에 관한 한 한은의 딜레마는 여전히 깊고 심각하다. 금리 인상과 인하 요인이 상존하는 가운데 각각의 요인들이 맞물려 통화정책의 일방향 진행을 강하게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3%대 고물가가 5개월째 끈끈하게 지속되고 있고 물가경로에 대한 불확실성마저 크다는 점은 기준금리 인하를 저지하는 요인이다. 한은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늘어나기만 하는 가계부채 역시 부담스럽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미국과의 기준금리가 이미 역전 상태에 있다는 점도 신경이 쓰인다. 우리가 한 차례만 더 기준금리를 내리면 역전폭은 2.25%포인트로 커지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견뎌낼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인만큼 후유증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황으로 따지자면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큰 시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요구가 있다 할지라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다. 금리를 올렸다가는 힘을 잃어가는 성장 동력이 더 약해질 수 있고, 장기간의 긴축 기조 탓에 곪아있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한꺼번에 부각될 수 있다.

정체 상황의 장기화 속에서도 한은 기준금리는 조금씩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대개 금리 하락 시점을 올해 하반기로 보고 있다. 하반기에만 두 차례 정도 금리 인하가 단행돼 연말이면 기준금리가 3.00%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많은 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은의 첫 번째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7월로 점쳤다. 하반기에 소비가 부진해지고 물가 상승률 둔화도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과 연계된 관측이다.

상반기 조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 중 또 다른 하나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연준)의 완고한 통화정책 스탠스다. 이달 초 공개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는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매파적인 연준의 입장이 담겨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물가목표(2%)에 수렴해간다는 분명하고도 지속적인 움직임이 보일 때까지는 기준금리를 제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쓰인 부분이었다.

연내 피벗 가능성은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이창용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추가 인상 필요성이 전보다 줄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한 점이 그 단서였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동결이 만장일치로 결정됐음을 전하면서 “물가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고 국제유가와 중동사태 등 해외 리스크가 완화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통위 내부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총재는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 효과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조기 피벗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했다. 이 말은 ‘현 상황’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로 읽힐 만한 것이었다.

금통위원으로서의 의견이 아니라 사견을 전제로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란 발언도 했다. 조기 피벗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최대한 강하게 발신하기 위해 한 발언이 아닌가 싶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시장에서 거론돼온 태영건설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요지는 태영건설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가 아직은 금리 조정이라는 거시적 조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이 총재는 비유적 표현으로 대포와 소총을 거론하며 “지금은 소총도 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확언했다.

이 총재는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이나 건설업의 큰 위기로 번져 시스템 위기가 될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하면서 “부동산 PF가 시장 불안정을 일으키면 한은이 언제든지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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