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시에 개정되지 않는 바람에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5∼49인)에까지 법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해당 소상공인들로서는 날벼락을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그들 소상공인은 그간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도 설마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었다. 그런 기대는 정부와 정치권이 80만 소상공인들을 존폐의 기로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란 상식적 판단에서 비롯됐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영세 사업장에 800만 근로자가 생계를 의탁하고 있다는 점도 그런 상식을 뒷받침해주었다.

하지만 이 일에 관한 한 정치권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여·야가 네탓 공방만 벌이며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법 시행 시점을 코앞에 두고도 개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그간 50인 이상 사업장에 한해 적용돼왔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년 유예기간을 둔 데 따른 것이었다. 그 시한이 이달 26일까지다.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의 효력이 미치도록 규정돼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적용 범위 확대 시점이 한발 한발 다가오자 여·야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기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공방만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부나 여·야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유예기간 동안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컨설팅 지원 등에 나섰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당과 협의해가며 유예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법 개정은 국회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일으켰고 결국 시한 내 의결이 불발되고 말았다. 과반 의석을 지닌 더불어민주당은 몇몇 조건을 내걸며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법 통과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조건 중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떼어내 독립 외청으로 만들자는 것이 민주당의 요구다.

하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를 거부하며 여·야 간 협상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정부는 1조5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힘쓰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정부와 여당은 외청 설립 요구 등은 대외적 명분일 뿐 사실은 민주당이 노동계를 의식해 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민주당도 정부 여당을 향해 날선 비판을 퍼붓고 있다. 2년 동안 유예 기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적 대처 없이 세월만 보내다가 이제 와서 시간을 2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이냐는 게 야당 측 주장이다.

양측의 주장엔 각각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다. 우선 산업안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야당 측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정부가 기존의 2년 유예 기간 동안 영세 사업장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을 효율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실상은 소상공인들이 말하는 법 적용 반대 이유 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소상공인 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의 절반 정도에서는 법에 규정된 안전 관리자를 따로 두지 못하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들은 안전 관리자를 겸직할 수 없도록 한 규정 탓에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 데 그게 현실 여건상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해당 사업주중 상당수는 자신의 사업장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곧 들게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모두가 정부의 부실한 준비 또는 행정 서비스에 기인한 것들이다.

야당도 비난받을 소지를 안고 있다. 이처럼 엄연한 현실을 무시한 채 귀족 노조로 대변되는 노동계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누가 옳든지 간에 여·야의 해법 없는 비난전에 당장 발등의 불을 만난 쪽은 소상공인들이다. 물론 소속 근로자와 그 가족들도 발등을 데일 처지에 놓이게 됐다.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는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으로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국회를 향해 개정 법안 의결을 호소했다. 대부분 영세 사업장들이다 보니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이 기본 이유였다.

이런 현실에서 법 적용이 현실화되면 식당이나 호프집 등이 포함되는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미봉책일망정 당장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려는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워낙 상황이 다급해진 만큼 여·야 모두 일단 네탓 타령을 뒤로 미루고 적절한 중재안을 마련해 하루라도 빨리 개정 법률안을 확정짓고 본회의 의결을 시도하는 게 정답이다. 책임 공방은 그 이후 소상공인 사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보강해가며 벌여도 될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