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하림 기자]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이 플랫폼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강경하게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플랫폼업계와 학계는 물론이고 미국 상공회의소마저 우려 의견을 표했다.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뚝심’ 혹은 ‘고집’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될 것” vs “사전규제 아닌 사후규제”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플랫폼 규제 속도가 느린 현실 때문이다. 이달 24일 공정위 육성권 사무처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현행 공정거래법 집행 체제로 플랫폼 기업의 반칙 행위를 제재하면, 심의를 마치고 시정 조치할 즈음에는 시장이 이미 독과점화가 돼서 경쟁질서 회복이 늦다”고 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공정위는 아직 플랫폼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정부 관계자들의 언급과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업계 내 독과점 지위를 가진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고, 4대 반칙 행위(▲자사 우대 ▲경쟁플랫폼 이용 제한 ▲끼워 팔기 ▲최혜대우 요구)를 금지한다. 지정 방식으로는 매출, 시장 점유율, 이용자 수 등 정량적 기준을 정한 후 이를 충족한 플랫폼을 대상으로 정성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공정위는 다음 달 안에 상세한 윤곽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로선 지배적 사업자로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4개사가 물망에 올라 있다. 그밖에 거론됐던 쿠팡은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배달의민족은 매출 규모 측면에서 기준에 미달해 규제 대상에서 빗겨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플랫폼업계는 공정위의 법안 추진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플랫폼법이 사전 규제적 성격이 짙어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2019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타다를 비롯한 승차공유서비스들이 몰락했는데, 그때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되리란 것이다.

29일 민간 비영리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국내 스타트업 대표와 창업자, 공동창업자 등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8%가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자에게 “역동적인 플랫폼업계에 규제가 가해지면 발전 동력이 꺾이는 것은 물론 투자도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타다 등을 사례로 들며 “정부 규제 없이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미국처럼 국민 안전에 위협이 없는 한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승차공유 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봉쇄한 ‘타다 금지법’과 달리 플랫폼법은 사후 규제라고 반박한다. 육성권 사무처장은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자를 미리 지정만 해놓는 것”이라며 “규제는 위반 행위가 사후에 발생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에 사전 지정, 사후 규제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자국 기업이 규제당할 위기에 놓이자 미국 상공회의소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29일(현지시간)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수석부회장은 “한국이 플랫폼법 통과를 서두르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플랫폼법은 소비자에게 명백하게 이익이 되는 경쟁을 짓밟고, 건전한 규제 모델 기본이 되는 선량한 규제 관행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굴린 스노볼, 플랫폼 규제로 돌아오나

정부가 플랫폼 규제 법안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갑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플법) 제정을 추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자율규제 기조를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규제 도입 대신 플랫폼 자율규제 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율규제 흐름이 뒤집힌 시점은 2022년 말이다. 2022년 10월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127시간가량 기능하지 않는 사건이 있었는데, 카카오톡이 멈추자 사회 기능도 반쯤 마비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때를 기점으로 독과점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며 공정위에 지시했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도 “플랫폼 독과점 구조가 고착되면 소상공인들이나 소비자들이 선택의 자유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나이스경제와 통화에서 “카카오톡 먹통 사태, 유럽연합(EU)이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하는 국제 상황 등이 맞물렸다”며 플랫폼법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EU는 지난해 5월 구글, 아마존, 애플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문제는 이렇다 할 플랫폼 기업을 갖지 못한 EU와 달리 우리에겐 네이버 등 거대한 토종 플랫폼들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교하지 못한 규제는 우리의 발등을 함께 찍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독과점 규제’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플랫폼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해외 플랫폼들을 규제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꼽힌다. 구글처럼 한국에 서버를 두지 않는 경우 실질적으로 감시하기 어려울뿐더러, 미국과의 통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공정위의 소통 부족이 업계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온라인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네이버·카카오·구글·애플만 규제한다고 해도 내년, 내후년은 어떻게 되겠나”라면서 “어떤 기준으로 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할지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만 손해 볼까 봐 걱정된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스타트업 관계자도 “원래 자율규제를 강조했는데, 1~2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정책을 바꾸면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다만 법안이 시행되려면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플랫폼법이 시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정치권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각계각층의 여론을 살피느라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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