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본 시리즈’ 최신판을 추가로 내놓았다. 이름하여 ‘출생기본소득’이다. 이행 방식으로 ‘분할목돈지원’이란 생소한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31일 뒤늦게 진행된 신년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시작된 이 대표 특유의 ‘기본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것은 이전의 어느 것보다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연설문 내용을 토대로 제시안의 대강을 유추해보자면,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최소한 대학졸업 때까지는 국가가 기본 양육비와 교육비를 지원토록 하자는 내용인 것 같다.

실행 방식으로 제시된 ‘분할목돈지원’이란 현재 아동수당 등처럼 소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고비마다 뭉텅 뭉텅 목돈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출생아의 기본적 양육과 교육을 공동체가 책임지도록 하자는 게 제안의 골자라 할 수 있다.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 연합뉴스]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 연합뉴스]

무리 없이 실행만 될 수 있다면 환상적인 내용이라 할 만하다. 이 대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아동수당이 ‘출생기본소득’의 맹아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방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민주당은 저출생 문제 해결 방안으로 모든 신혼부부에게 1억원의 결혼·출산지원금을 대출해준 뒤 자녀 두 명을 낳으면 대출액의 50%를, 세 명을 낳으면 전액을 감면해주자는 방안을 제시했었다. 출생 이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달 10만원의 자립펀드를 지원하고, 8~17살 때는 월 2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자는 방안도 따로 내놓았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엔 대학 졸업 때까지 있을 생애 고비마다 뭉텅이로 현금을 지급하자는 방안을 새로 제시한 것이다. 이런 제안들을 듣고 있자면 유토피아가 머지않아 코앞에 닥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양육과 교육 전반을 공동체가 책임져준다니 아이는 물론 모든 부모에게는 그 이상 환상적인 제안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민주당이 집권해야 가능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표심이 절로 움직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단적으로 말해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기본생활을 보장해준다는데 그 이상 달콤한 제안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인류 역사에 그런 지상낙원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 이상향을 꿈꾸며 시도된 역사 속 실험들은 하나 같이 실패로 돌아갔다. 해묵은 공산주의 이념이나 좌파적 포퓰리즘이 모두 실패했다는 얘기다. 그 결말은 국가경제의 파탄, 때로는 소련(소비에트연방) 해체와 같은 공동체의 소멸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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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 대표가 ‘출생기본소득’ 방안을 제시하기 이전 민주당이 내건 저출생 대책만으로도 연간 28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전해졌었다. 민주당 자체 추산액이 그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 대표의 새로운 제안이 더해지면 또 얼마나 많은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나 민주당은 이처럼 엄청난 공약을 제시하면서도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다. 굳이 찾자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고 했던 게 재원 마련 방안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훗날이야 어찌 됐든 당장은 포퓰리즘이 통한다는 계산이 아니고선 취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그 부정적 후과는 지금의 1020 또는 2030세대들이 떠안는 게 된다는 게 정한 이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라경제를 망가뜨리는 위정자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든 걸 재정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점이 그것이다. 유능한 위정자가 경제 활성화로 국민소득과 세수가 늘어나게 해 여유롭게 재정을 쓰면서도 나라살림을 튼실히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건전재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재정은 면역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는 거대 규모의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라살림 운용엔 치밀한 계획이 수반돼야 한다. 최소한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본방도는 마련해둔 뒤 지출 계획을 세우는 게 정상이다. 하다못해 적자국채를 찍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라도 내놓으며 재정지출을 말하는 게 수권하려는 정당의 지도자다운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를 부정한다면 눈가리고 아웅하듯 후대가 쓸 돈을 은근슬쩍 당겨와 지금 국민들에게 나눠주며 환심을 사겠다는 심보를 지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마구 써도 되는, 주인 없는 돈이 결코 아니다. 그 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내일의 세대들이 함께 누리고 활용해야 할 고귀한 자산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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