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부영발(發) 민간기업의 출산장려금 지급 이슈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부영 이중근 회장이 최근 출생한 자사 직원들의 자녀 70명에게 1억원씩을 출산장려금 명목으로 지급한 것이 단초가 됐다.

저출생 문제 해결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지금 민간기업의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출산장려책 실행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애가 나타났다. 출산장려금이 근로소득으로 잡히는데 따라 발생하는 엄청난 세금이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파문의 중심점은 이달 5일 있었던 부영그룹의 2024년 시무식 현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중근 회장은 2021년 1월 1일 이후 태어난 자녀를 둔 직원들에게 자녀 1인당 출산장려금 1억원씩을 지급했다. 명색이 출산장려금인 이상 실질적 지급 대상은 출산의 주체인 직원들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부영은 1억원의 수령 대상을 직원 자녀로 명시했다. 출산 장려 대상인 기혼 직원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출산장려금’이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돈을 지급한 것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가 연출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직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형식을 취하면 지급된 1억원이 근로소득으로 잡힌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총액 기준으로 연봉 5000만원을 받는 A씨가 출산장려금 1억원을 받았다면 과세 당국은 그의 연간 근로소득을 1억5000만원으로 잡고 소득세를 매기는 게 현실이다.

이럴 경우 A씨의 근로소득세는 3900만원에 육박한다. 이는 우리의 근로소득세 세율이 과세표준 구간별로 1400만원 이하 6%, 50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1억5000만원 이하 35%로 정해져 있는데 따라 나타나는 결과다. 여기에 지방소득세를 더하면 A씨의 세금 부담액은 4000만원을 넘어서게 된다.

반면 A씨가 1억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소득세를 낸다면 5000만원에 대한 세금(구간별로 15% 또는 6%)은 600만원 남짓에 그친다. 추가로 받은 1억원 때문에 더 내는 연간 세금이 무려 3000만원 이상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1억원이 부영 측 희망대로 증여로 간주될 경우 부과되는 세금(증여세)은 1000만원에 그치고 만다.

문제는 세정 당국의 반응이었다. 부영 측 요구대로 출산장려금 1억원을 직원 자녀에 대한 증여로 인정해줄지가 관건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세정 당국이 행정편의와 만일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해 ‘법대로’를 고집한다면 부영 측의 ‘선행’은 빛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때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 세정 당국이 여론을 살피며 출산장려금에 대한 세금 부담 완화 여부를 고민하는 사이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의 자발적 출산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혜택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대통령실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대통령이 세정 당국을 향해 민간기업 출산장려금에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공개적으로 내린 셈이다.

대통령의 발 빠른 지시로 이번 혼선은 부영 측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기에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로서도 필요시 법령 개정에 나서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빌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만약 일 처리를 세정 당국에만 맡겨두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추정컨대, 출산장려금 과세 문제는 논란만 키우며 시간을 끌다가 용두사미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긍정적 검토를 한다 해도 조심성 많은 공무원 집단의 속성상 정부 차원에서 해결 방안이 도출되려면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당장 결론내리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반응이 세정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서 흘러나온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세정 당국의 이 같은 자세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세금 경감이 탈세의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줄 가능성 등의 부작용을 상정할 수 있겠지만 이런 논리는 선의의 출산장려금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과를 낳게 된다.

비근한 예가 그간 숱한 논란을 일으켜온 기부금 처리 문제였다. 선의만 가지고 섣불리(?) 거액 기부에 나섰다가 세금폭탄에 만신창이가 되는 독지가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결과 그들의 사례가 ‘기부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교훈 아닌 교훈으로 길이 남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업들이 6세 이하 직원 자녀의 보육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수당도 기부금 사례 못지않게 논란을 낳고 있다. 지급액이 월 20만원을 넘을 경우엔 여지없이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은 그 자체로 순수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부영이 법인세 공제 혜택까지 포기해가면서 출산장려금을 증여 형식으로 지급한 것만 보아도 그 순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근로소득이 아니라 증여로 귀결될 경우 이번에 부영이 지급한 70억원은 비용처리가 되지 않아 법인세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같은 돈을 내더라도 근로소득 명목일 때 오히려 더 이롭다는 의미다.

출산장려금이 식대나 교통비 등처럼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돈이 아니라는 점, 지급 대상이 분명한데다 1인당 지급액이 상식적 수준을 넘지 않을 것이란 점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출산장려를 빙자해 특정 대상에게 거액의 탈법적 증여를 시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중소·중견기업 직원 및 비혼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그게 출산장려금 지급의 유용성을 상쇄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기혼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는 혼인을 권장하기 위한 불평등 압력이란 취지로 이해될 여지도 어느 정도는 있어 보인다.

특히 문제가 될 만한 점은 중소·중견기업의 기혼 직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일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이 문제를 해소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민간이 상생기금을 마련해 중소·중견 기업 기혼 직원들이 출산장려금 지원 혜택을 함께 누리도록 해주는 것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출산장려는 ‘해도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한 발 늦었지만 정부도 절감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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