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로 반등했다. 올해 첫 달에 모처럼 2%대로 하락해 기대를 모았던 물가 상승률이 한 달 만에 우상향으로 흐름을 바꾼 것이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품목은 신선식품, 그 중에서도 사과·배로 대표되는 신선과실이었다. 사과의 경우 국내 소매가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일 통계청이 밝힌 월례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에 비해 3.1% 상승한 113.77(2020년 = 100)을 나타냈다. 전달의 상승률은 2.8%였다. 이로써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 행진을 이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사과·배 등의 과일가격 동향이다. 2월 중 신선과실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41.2% 상승했다. 32년 만에 처음 보는 상승폭이다. 신선과실 중에서도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과와 배는 각각 71.0%와 61.1%의 상승률을 보였다. 사과는 지난 1월에도 56.8%나 오르며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한 품목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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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보면 사과를 필두로 하는 과일값의 가파른 상승이 신선과실 물가와 신선식품지수(20.0%), 소비자물가 총지수를 차례로 끌어올리며 고물가 시대 장기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신선식품지수는 작년 10월부터 두자릿수를 유지해오더니 지난달에는 20%대 선까지 올라서며 3년 5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사과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원인으로는 이상기후에 의한 수확량 감소가 꼽힌다. 사과꽃이 피는 지난해 4월 경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착과가 부실했고, 그 뒤로는 여름철 집중호우가 발생해 또 한 번 작황이 나빠졌다. 열악한 환경 탓에 수확량이 급감했지만 부족분을 메울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다 큰 문제는 앞으로도 사과 등 과일값을 안정시킬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 현실 탓에 소비자물가 흐름에 대한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사과값 하락 전망을 어둡게 하는 기본적인 요인 중 첫 번째는 외국산 수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배나 고추 등과 함께 사과는 외국산을 수입하려면 8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검역 단계를 거쳐야 한다. 병충해에 취약한 품목이다 보니 잘못될 경우 국내 재배 시스템 전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따라서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위생검역(SPS) 조치에 입각한 검역상 절차를 내세워 외국산 사과나 배 등의 수입을 장기간 금하고 있다. 사과값 논란이 크게 일 때마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산 사과 수입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곤 했지만 정부는 수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정부로 하여금 수입을 꺼리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일 재배농가의 예상되는 반발이다. 이에 따라 수입을 전제로 한 외국산 과일의 위생·검역 자체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사과나 배가 확실한 대체재를 찾기 쉽지 않은 과일이라는 점도 가격 안정화 시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는 정부가 바나나와 오렌지, 파인애플 등 외국산 과일을 대량으로 들여오더라도 사과값 등을 안정시키는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사과나 배 가격의 고공행진은 외국산 과일에 비해 대체효과가 큰 귤이나 딸기 등 기타 국산 과일의 가격을 덩달아 올라가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2월 중 귤과 딸기가 각각 39.8%, 23.3%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 그런 현실을 대변해주었다.

정부는 일단 3~4월 중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을 위해 600억원을 투입하고 수입 과일의 직수입 양을 늘리는 등의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수입과일 일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관세 인하 조치도 함께 취해진다. 국산 과일 품귀를 해결할 결정적인 대안은 없지만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과값 등의 고공비행을 최대한 억제해보겠다는 것이다.

과일가격 외에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국제유가도 물가 불안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2월 중 국내 석유류 물가 하락폭은 전달(-5.0%)보다 크게 줄어든 1.5%를 기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전달(2.6%)보다 낮은 2.5%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OECD 방식)와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국내 전통방식)의 상승률이 각각 2.5%, 2.6%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근원물가 집계치는 국내 물가의 추세적 흐름이 그리 나쁘지 않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2월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전달의 상승률은 각각 0.6%와 3.4%였다. 이는 소비자들의 체감물가가 아직은 만만치 않게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생활물가지수는 조사 대상 458개 품목 중 일상에서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 144개를 따로 추려낸 뒤 산출한 세부 물가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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