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임수편에 나온다는 공자와 관련된 일화 한토막.공자가 곤궁에 처해 수일째 곡식 한 톨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제자 안연(본명 안회)이 어찌어찌 쌀을 구해와 밥을 짓고 있었다. 이를 모르던 공자가 밥 냄새에 이끌려 방 밖을 내다보니 때마침 안연이 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있었다. 공자는 안연을 의심했다. 스승에 대한 공경심이 남다른 줄 알았던 그가 자신보다 먼저 음식에 입을 대는 것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연이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공자는 시치미를 떼며 “밥이 깨끗하다면, 아버님께 먼저 제
잘잘못을 논할 때 양시양비론은 당당한 논리가 될 수 없다.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결함을 안고 있어서이다. 이럴 경우엔 양분론이 양시론이나 양비론보다 적절하다. 잘잘못은 엄격한 잣대를 통해 재단하는 게 사회 정의에도 부합한다. 경계해야 할 일은 선택의 영역인 호오(好惡) 또는 이념을 근거 삼아 피아를 가르는 일이다.불가의 기본철학인 윤회설의 기저를 이루는 정신도 이분법적 개념인 상선벌악(賞善罰惡)이다. 전세에서 현세로, 현세에서 내세로의 윤회를 통해 잘 한 일로는 상을 받고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받
이런 적이 있었나 싶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임기를 보름여 남겨둔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후임자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은 일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 생소하고 비현실적이어서 기사화된 인터뷰를 읽는 내내 낯선 느낌과 함께 ‘이건 뭐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발언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 순간의 감성에 사로잡혀 한 말들이라 여기기엔 시종 너무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전개됐다. 감성이 즉흥적일 수밖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절 관광차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련(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새롭게 출범한 지 2년 남짓한 때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철의 장막’이니 ‘죽(竹)의 장막’이니 하는 유행어로 상징됐던 공산권 국가들의 폐쇄성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크렘린’이란 말은 일반명사화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장소’를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곤 했다. ‘크렘린 같은’이란 말은 극단적 폐쇄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수사였다.그런 시절이었던 만큼 ‘붉은 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통령선거 후보 TV토론회가 두 차례 진행됐다.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목적으로 유권자들은 지난 달 21일의 경제 분야 토론에 이어 25일 진행된 정치 분야 토론회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다.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유권자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토론회를 지켜본 다수 시청자들은 두 번째엔 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히려 더 저질스러워진 토론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 지켜보긴 했지만 방송 시간 내내 불편함과 불쾌감이 가시지 않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선거 후보와 그의 부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무속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을 지핀 곳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윤 후보가 왼손 바닥에 왕(王)자 글씨를 적은 채 후보 경선 TV토론회에 나선 것이 빌미를 제공했다. 민주당 대표는 이를 무속과 연결지으며 “최순실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공격했다. 이후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 무속인이 합류했다는 설이 추가되면서 ‘굿힘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민주당은 무속 논란을 부른 윤 후보 행동의 배후에 김건희씨가 있다고 주장한다.민주당은 또 무속 관련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가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르지 말자고 제안해 화제가 됐다. 자신이 당선될 경우 퍼스트 레이디 담당 조직인 청와대 제2 부속실을 없애겠다는 취지를 밝히며 한 말이었다. 이 제안은 진짜 속내를 숨긴 채 영부인이란 호칭이 현대 시민사회의 의식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여겨진다.이 발언이 나오자 정가에서는 이런저런 논평이 제기됐다. 어떤 이는 영부인이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니 거기에 따로이 의미를 더하고 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더구나 특별한 경칭도 아니니
박근혜 정부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금 징수를 거위 깃털 뽑기에 비유했다가 국민적 지탄을 받았었다. 세금을 달가워할 리 없는 일반 국민들의 감정을 약 올리듯 건드린 탓이다.단순 설화(舌禍)로만 기억되기 쉬운 사건이지만 조 전 수석의 발언엔 의미심장한 데가 있었다. 특히 조세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이라면 일면 두고두고 곱씹을 가치를 지닌 말이었다.그의 말엔 거위 깃털을 뽑을 때는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나씩 뽑아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납세자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세금을 거둬
대권 주자들이 경제정책 아이디어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붕괴된 중산층 복원에 대한 의지는 별반 눈의 띄지 않는다. 체계화된 중산층 관련 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보기 힘들 정도다. 문재인 정부 4년여 동안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비난을 퍼붓는 보수 야당 후보들도 예외가 아니다.보수 야당 주자들의 지적대로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통계청의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을 보더라도 2018~2
성남 대장동을 무대로 벌어진 일확천금 사건의 파장이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사건엔 특별한 관계로 얽힌 범상치 않은 인사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민감한 소재인 부동산을 매개로 소자본을 투자해 단기간에 수천억원의 개발이익을 취했다. 거기에 편승해 상식 밖의 떡고물을 챙긴 이들도 있었다.보통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사건의 성격은 간단명료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얻은 이익이 과했고, 보통사람들에게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성취가 너무도 쉽게 실현됐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 같은 인식의 바탕엔 대장동에서의 역사
2년여 전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이 우리사회를 풍미하던 시절,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었다. 내용인 즉,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경내에 비밀리에 사찰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 이름이 ‘민간인사찰’이었고 △사찰 안에 불상이 하나 모셔졌는데 그 이름은 ‘내로남불’이라는 것이었다.풍자소설 같은 이 이야기가 시중에서 유행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 당시 우스갯소리도 뜬금없고 맥락 없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고 봐야 한다. 군사정권 시절 대학가 곳곳에서 펼쳐지던 탈춤 공연의 정제
“조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의 수도 ○○입니다.”60, 70년대 군사정권 당시 외국에서 한국대표팀 또는 선수가 스포츠경기를 시작할 때 TV나 라디오를 통해 카랑카랑하게 흘러나오던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매양 이랬다. ‘축구팬 여러분’ 또는 ‘복싱팬 여러분’ 정도면 적당했을 텐데 캐스터역을 맡은 아나운서들 입에서는 으레 ‘국민’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스포츠가 국뽕의 소재로 기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과거 군사정권들은 스포츠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활수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엘리트 스포츠에 유독 집착하게 된 것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세제 관련법들은 누더기가 돼버렸다. 거대 여당 의도대로 즉흥적으로, 여러 번 손질을 가한 탓에 세무사들조차 관련법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장기 비전이나 지향점 없이 그때그때 부동산 세제를 바꾸다 보니 이젠 집값 안정화라는 목적의식조차 희미해져 버렸다.현 정부가 부동산 세제에 손질을 가하기 시작할 때 내세운 명분은 집값 안정이었다. 집은 투자·투기가 아니라 거주의 수단으로만 기능해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도가 다른데 있었음이 차차 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심심찮게 듣는 말 중 하나가 ‘세금착취’다. 과거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들었던 ‘착취’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표적이 ‘임금’에서 ‘소득’으로, 착취의 주체가 ‘기업’에서 ‘정부’로 바뀌었다. 한 가지 동질적 요소가 있다면 그건 착취를 당하는 이들의 고통이다.물론 착취에 대한 인식 및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근로자 또는 납세자 쪽에서는 부담이 조금이라도 무겁다 느껴지면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십상이다.아이러니한 점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기업의 착취에 대해서는 유별난 경
필자는 오래 전 이 난에서 상대적 평등이란 주제를 논한 바 있다. 모든 법적 평등은 기계적·절대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논설의 골자였다. 상대적 평등을 규정한 법률 중 대표적인 것으로 병역법을 꼽았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병역법은 남성에 한해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평등의 원칙 위배라 주장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올해 4·7재보궐선거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특히 기성세대들 마음속엔 남성만의 병역 이행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그러나 여당의 재보선 참패가 확인된 지금
#사례 1.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에 LG유플러스 1호 무인매장 ‘U+언택트 스토어’가 들어섰다. 이 곳에서는 스마트폰 유심 개통과 기기 변경, 신규 가입, 번호이동 등을 고객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고객은 셀프 개통존에서 기기 종류, 단말기 할부기간, 요금제, 요금할인 방식, 부가서비스 혜택 등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엔 새로 산 스마트폰과 유심카드를 받는다.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U+언택트 스토어’는 올해 안에 부산과 대전·대구·광주 등에서도 개설된다.#사례 2.2034년이면 미국에서 은행 점
철학자 피터 싱어는 명저 ‘실천윤리학’을 통해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이란 걸 제시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지진에 의한 재난 상황을 가정했다. 지진이 일어나 두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고통을 덜어줄 모르핀은 두 개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은 다리 골절상에 신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다.싱어는 이런 상황에서 두 개의 모르핀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 물었다. 그리곤 스스로 답하길,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하자면 골절상을 입은 환자에게 두 개의 모르핀을 모두 투약해야 한
문학작품이든 신문기사든 모든 창작문은 이념과 완전히 무관해지기 어렵다. 글 속엔 어떤 식으로든 글 쓴 이의 이념적 성향이 내포되기 마련이다. 다만, 노골적인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문학작품을 예로 들면 - 신문기사도 그렇긴 하지만 - 이념이 마치 콘크리트 건축물 속의 철근처럼 잠재돼 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서툰 작가의 이념 과잉은 필시 문학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런 작품의 이념은 마치 건물 밖으로 흉물스럽게 돌출된 철근과 같다.건축물의 철근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건물의 기본틀을 유지해줄 때 그 소임을 일백 퍼센트 다한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12월 마지막 일몰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를 장식한 다사다난의 중심엔 코로나19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창궐은 우리 모두에게 미증유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오랜 세월 유지돼온 우리의 일상이 흐트러졌고, 경제 또한 엉망이 되고 말았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모처럼 뒷걸음질까지 경험해야 했다.그렇다고 해서 그 원인을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진단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지난해를 되돌아볼 때 우리 경제가 망가진 데는 불가항력 이외의 요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나면 한국을 ‘부자 나라’로 추어올린다. 저의가 담긴 표현일지라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전략상 국제사회에서 신흥국을 자처하고 있지만, 경제 규모 10위권 언저리에 있는 부자 나라임에 틀림없다.부자 나라라고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이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경우도 있다.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중국과 함께 3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과 달리 1인당 GDP도 높은 편이다. 우리의 통계 당국이 집계